- 2010, 고베
동생은 JR 라인의 안내 방송을 무척 담아가고 싶어했다. 난 띠로롱 띠로롱 그치지 않고 울려대는 멜로디가 지겨웠지만 런던에서 Mind the gap- X 3 안내방송은 종종 따라했던지라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 작은 디지털카메라로 동영상을 촬영하면 소리가 같이 담을 수 있음을 알려줬더니 '오오오오오 그런 방법이!!!' 하고 외치더니 진짜로 그렇게 소리를 저장했다(그런데 대체 왜 그걸 화장실 변기에 앉아서 혼자 재생해보는거지? -_- 좌우지간 이놈이랑 같이 여행하다보면 진짜 초웃기다).
한 장의 사진 역시 여행에 대한 기억을 더듬거나 추억을 떠올릴 때 도움이 되는 요소지만, 가끔은 그 순간의 소리에 대한 그리움도 있다. 모든 도시에는 저마다 고유의 소리가 있다. 열차 사진을 보면 각 구간에서 듣던 방송이 생각나고, 시장 사진을 보면 바쁘게 오가는 사람들과 행상인의 소리가 들어보고 싶어진다. 으엇, 보이스 레코더가 있었더라면 히드로 공항 착륙을 알리는 기내 방송, 루체른에서 베니스로 넘어가는 기차에서 듣던 국경을 넘어가면서 바뀌는 이탈리아 기장의 목소리, 카펠교에서 연주하고 있던 악사의 악기 소리, 카오산에서 짜뚜짝 시장을 가려고 탔던 37번 버스에서 한 시간 내내 들었던 현지인들의 수다 소리를 플레이 버튼 하나를 누르는 것만으로 다시 들어볼 수 있었겠다. 사진이 하나의 이미지를 붙들어두는 것이라면, 녹음은 시간을 담아두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여행중 수시로 떠오르는 잡다한 생각들은 그래 저녁에 잠자리에 들기 전에 노트에 적어두자고 생각하지만 막상 씻고 자리에 누우면 온데간데없고 피곤해서 빨리 불을 끄고 눈을 감고 싶을 뿐이다. 헛, 보이스 레코더를 사야할 이유가 여기 하나 더 추가된다.
아직 해가 뜨지 않은 이른 아침에 눈이 떠진다. 아이팟으로 손이 간다. 아이팟 나노가 5세대까지 나왔다는 사실을 어제야 알았다(내건 3세대). 애플의 A/S 정책을 보고 있자면 보증기간이 지나도 한참 지난 내 아이팟은 고장나는 순간 쓰레기통으로 직행이다. 조엘 오스틴 목사의 팟캐스트를 듣는다. 한국에서는 특유의 기복신앙과 맞물려 떨어져 Your Best Life Now(번역본 제목은 긍정의삶?긍정적삶?긍정의힘?)가 이상과열이다 싶을 정도로 인기가 많았다. 한쪽에서는 비판의 목소리도 만만치않았지만 이런 코드의 메시지를 전하는 목사도 어느정도 필요할 것 같다(특히 자존감이 한없이 낮아지고 무력감에 사로잡혀있는 상태인 사람들에게). 30분 내내 원고 보는 일 없이(했던 이야기 하고 또하고 중간중간 고개를 숙여 원고 보면서 읽으시는데다 목소리에 강약의 조절이 없으신 분들과는 대조적) 쉴새없이 잘 짜인 각본을 토대로 수없이 연습한 것 마냥 이야기한다. 시종일관 교인들과 눈을 마주치면서 메시지를 전달하고 중간중간 드는 예시도 와- 난 일주일 내내 연습해도 이렇게 할 수 없을 것 같아- 싶은 생각이 든다. 팟캐스트를 들을 때마다 느꼈던건데 이 날은 유독 말을 잘한다는 느낌이 강했다. 30분이 지났다. 아침이 밝아온다.
'여행이야기 > 일본' 카테고리의 다른 글
| 편의점 에피타이저 (0) | 2010/02/03 |
|---|---|
| 히메지 성 (8) | 2010/02/02 |
| 여행중 천천히 흐르는 시간 갖기 (10) | 2010/02/01 |
| [오사카] 잇푸도一風堂 라멘 (8) | 2010/02/01 |
| 간사이에서 차를 마신다 (0) | 2010/01/28 |
| 모든 도시에는 고유의 소리가 있다 (4) | 2010/01/27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