넓은 면적의 CCD, CMOS를 채택하고 있는 카메라의 우수함은 누구나 알고 있다. 하지만 사진이라는 매체가 꼭 그렇게 화질에 관한 자그마한 차이에 연연해야 할 필요는 얼마나 있을까. 정말 좋은 사진의 본질은 흠 잡을 데 하나 없는 깨끗한 화질이 아니라 마음의 울림에서 온다.
언제 이 물건을 샀는지 정확히 기억이 나질 않아 캐논 코리아 컨슈머 이미징 사이트에 들어가 보았다. 작년 5월 초에 구입했다. 남대문 수입상가와 충무로 등지의 카메라 샵을 돌아다니는 수고와 교통비를 들였지만 전체가 실버 색상으로 도배된 녀석만 있었고, 그나마도 내수용 모델이었다. 그날 저녁, 집으로 돌아와 열심히 인터넷을 뒤져 카메라를 주문했다.
핸드백이나 가방에 부담없이 항상 넣어두고 다닐 수 있는 조그마한 카메라를 두고 화질이 어떻다, 화소가 어떻다 미주알 고주알 따지는 일이 DSLR을 쥐기 시작하면서부터 도토리 키재기로 여겨졌다. 작은 카메라에 대한 접근이 다른 측면에서 이루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물건의 존재감, 질감, 그리고 무게감은 그 사용자에게 다양한 방식으로 영향을 미친다.
부담없이 신고 다니는 캔버스 화를 신었을 때와, 큰 마음 먹고 구입한 구두를 신었을 때의 행동거지가 같을 수는 없다. 아무래도 검고 커다란 바디와 그에 맞물린 두꺼운 렌즈를 들고 있자면 사진을 찍는 자세가 달라지는 것처럼 말이다. DSLR은 작정하고 사진을 찍을 때에야 비로소 어깨에 메고 집을 나서게 된다. 사진을 찍는 자세 역시 다르다. 나와 대상 사이의 친근한 접근에 어느정도 부담을 주는 것이 사실이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비싼 취미로 사진을 한답시고 조그만 카메라는 무시하는 일부의 편협한 생각과는 달리 작은 카메라 역시 어마어마한 매력이 있다. 나와 사물 사이를 가로막을 수 있는 부담을 최소한으로 줄일 수 있는, 말 그대로 최소한의 도구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캐논은 제품의 라이프사이클이 짧은 편이다. 니콘이 D80의 후속 기종을 2년 만에 내놓은 것과 달리 캐논은 니콘 D80보다 좀 더 상위 기종이랄 수 있는 30D마저도 그 후속 기종을 2년 동안 두 차례나 갈아치웠다. 익서스 역시 예외일 수는 없다. 1년이 조금 넘는 기간 동안 익서스 80, 85, 90이 발매되었다. 하지만 익서스 70의 단순한 직사각형 디자인이 너무나 마음에 들어서 새 기종에 대한 아쉬움이 전혀 생기질 않는다.
캐논은 80년대부터 그 이전의 각진 디자인 대신 둥글고 부드러운 디자인을 내세우기 시작했다. 난 캐논의 둥글둥글한 디자인에 이상하리만치 정이 가질 않았다. 그 와중에 익서스 70의 디자인 모티브는 복고였다. 초기 캐논 모델들의 디자인을 리뉴얼했기에 다소 투박하지만 한편으로는 군더더기 없는 정돈된 외관을 가지고 있었다. 손에 쥐었을 때의 단단한 재질감은 만족도를 더해주었다. 특별한 이상이 생기지 않는다면 당분간 계속해서 애용할 생각이다.
DSLR이 사진을 찍기로 작정한 날이라야 챙겨서 어깨에 두르고 나갈 수 있다면, 이 카메라는 언제나 빼들 수 있을만큼 가볍고 작다는 면에서 사진에 대한 의식을 자유롭게 해준다. 좋은 사진을 찍어야 한다는 의식이 없기 때문에 자유롭게 찍을 수 있다. 일상적 삶을 제한없이 찍을 수 있다. 찍히는 사람 역시 부담없이 렌즈를 바라볼 수 있다.
'소소한일상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잡담] 스킨 배경, 심슨화(Simpsonize) (2) | 2008/09/27 |
|---|---|
| 네모진 단순한 디자인의 미학 - 캐논 익서스 70 (14) | 2008/09/26 |
| "이주의 TTB 리뷰" 당선 (14) | 2008/09/24 |
| [자랑] 이니스프리 남성매니아 체험제품 도착! (6) | 2008/09/15 |
| [일상] 광고에 제 멘트가 실렸네요 + (12) | 2008/08/12 |
| 내가 사랑하는 당신은 - 도종환 (0) | 2008/08/02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