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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뼛속까지 자유롭고 치맛속까지 정치적인

뼛속까지 자유롭고 치맛속까지 정치적인 - 8점
목수정 글, 희완 트호뫼흐 사진/레디앙

  필그레이님의 소개글을 읽고 바로 읽었던 책. 제목이 책의 내용을 대강 함축적으로 보여준다. 2007년, <레디앙>(www.redian.org)에 연재했던 '프랑스남자와 결혼하지 않고 살아가기'를 모태로 출간되었다. 글쓴이는 프랑스에 유학을 갔다가 만난 프랑스 예술가와 사랑을 나누고, 결혼 없이 아이를 낳는다. 한국에서는 법적으로 비혼으로, 프랑스에서는 시민연대계약(PACS)을 한 동거인으로 살아온 이야기를 담았다.

  문화적 차원에서의 글쓴이의 뚜렷한 가치관과 프랑스 유학 중 느낀 프랑스와 한국과의 문화정책적인 차이를 비교하고 있다. 동시에 프랑스 남자 '희완'과의 사랑 이야기, 그리고 말미에 이르러서는 문화적 차원에서의 정치적인 접근, 그리고 당에서의 이야기가 고스란히 활자화되어 있다.

  '뼛속까지 자유롭고'라는 제목으로부터 책을 읽어보지도 않은 채 제도를 견디지 못하고 이탈한 채 유유자적하는 방랑기를 에세이 형식으로 쓴 것 아닌가 하는 섯부른 판단은 금물이다. 오히려 삶의 매 순간이 치열함으로 가득 차 있었으니까. 그동안 큰 인식 없이 우리네 사회를 구성해왔던 이모저모를 우리 사회 바깥에서 바라 본 시각에서, 때로는 장녀 장남이 있는 집안의 둘째 딸의 입장에서 적나라하게 지적하고 있다.

남아선호 사상이 '여전한' 한국에서 첫딸은 딸이기 이전에 첫 아이라는 이유만으로도 환대받을 수 있지만, 둘째 딸이 세상으로부터 주저 없는 환영을 받는다면 그것은 매우 운이 좋은 경우에 속한다. 더구나 내 경우처럼 아래로 남동생이 태어난다면 상황은 최악으로 치닫는다.

(중략)

언니와 남동생은 특별히 갈구하지 않아도 당연하게 사랑받으며 자랐다. 하지만 나는 열 살 무렵까지 그 둘 사이에서 끊임없이 부모의 애정을 요구했고, 존재 이유를 찾아 나름대로 '치열하게' 고민하며 시간을 보내야 했다. 가장 명백하게 반복적으로 차별이 드러나는 순간은 엄마가 식탁에서 밥과 국을 퍼줄 때였다. 나의 밥과 국은 언제나 마지막으로 놓였다.

- 목수정, <뼛속까지 자유롭고 치맛속까지 정치적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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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은 여자보다 월등히 우월한 남자의 근력에서만 나오는 것은 아니다. 폭력을 행사할 수도 있다는 의식에서 나온다. 남편에게 맞고 사는 여성들이 힘이 약하기 때문에 그렇게 무기력하게 당하는 것만은 아니다. 남편에게 폭력을 가하는 일이 그녀들에게는 의식적으로 허락되지 않는 일이기 때문이다. 맞으면서 파괴되는 것은 몸뿐만이 아니다. 자의식도 철저히 파괴된다.

나는 내게 폭력을 가한 그 남자의 손목에 쇠고랑을 채우는 수밖에 없었다. 그때 그는 고개를 푹 떨어뜨렸다. 그는 또 다른 권력 앞에서는 양처럼 순종하는 존재가 되었다.

- 목수정, <뼛속까지 자유롭고 치맛속까지 정치적인>


  뜬금없지만 이 책을 보면서 자꾸만 김훈이 생각났다. 그의 대표작 <칼의노래>의 등장인물 중 여성은 없다. 아니, 한 명 있다면 이순신과 동침하는 관기 '여진'이 등장하는데, 전라좌수영을 옮긴 이순신을 족적을 좇아 먼 길을 온 여진의 말은 고작 "예전에 제 몸을 편안해 하시기에.." 였다. 지독한 남성 판타지의 발로다. 이순신은 본가에서 새로 태어났을 아이를 생각하면서, 여진과 잠자리를 갖는다. 김훈은 여진의 체취를 농밀하게 묘사해댄다. 김훈을 가리켜 매력적인 마초라느니, 새내기 작가나 작가를 꿈꾸는 이들은 김훈의 스타일을 모방하기위해 그의 글을 필사하는 일도 불사한다던데, 저 대목에서는 지독한 마초구나- 라는 생각 뿐이었다.

  반면 이 책은 어떠한가. 보수적인 분들(여기서 '보수'의 의미는 다들 어림 짐작할 수 있는 그 분들도 한정짓도록하자)은 '이런 발칙한'이라는 평을 내리지는 않으려나? 그런데 책을 읽는 내내 다른 한 편으로는 속 시원하게 우리 사회 곳곳을 긁어주는 느낌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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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회에서 결혼이 여자에게 극단적으로 불리한 선택인 것은 한 남자와의 서약인 동시에, 무한대로 확장될 수 있는 그 남자의 친인척에 대한 일종의 노예서약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대학시절 뭇 남성들의 선망의 대상이었던 한 친구가 있다. 학자 집안에 태어나 공부도 잘했고, 얼굴도 예뻤고, 졸업 즉시 굴지의 대기업에 취직해서 막힘없는 삶을 살던 그녀를 졸업한 지 10년이 지나 또 다른 친구와 함께 만나기로 했다.

그런데 결국 그녀는 나오지 못했다. 외출 직전, 시어머니가 수요일 예배에 가니 시아버지 저녁상을 차려드리라는 호출을 받았던 것이다. 그 소식을 전하는 그녀의 목소리는 고통으로 일그러지지도 않았다. 그 정도의 종속에 이미 익숙해 있는 듯. 어디 하나 빠지는 구석이 없었던 그녀는 결혼시장에서 최상의 상품일 뿐이었고, 지금은 쓸 만한 며느리, 그럴듯한 아내일 뿐일까.

1년 전쯤 다시 그녀의 소식을 들었다. 이혼을 했고, 아이 둘과 외국에서 살고 있다는. 어쩐지 내 속이 후련해지는 느낌이었다. 또 하나의 여자가 허울뿐인 '정상'의 족쇄를 과감히 부수고 나왔다.

- 목수정, <뼛속까지 자유롭고 치맛속까지 정치적인>


  프랑스에서는 시민연대계약을 통해 결혼하지 않은 동거 부부(딱히 적당한 표현이 생각나질 않는다)의  가정생활을 법률혼과 거의 같은 정도로 보장한다. 한쪽 배우자가 외국인이라도 국내거주나 국적취득은 물론, 각종 사회 보장 제도의 혜택을 받는 데에 장애가 없다. 하지만 한국을 어떠한가. 한국에 귀화하기 위해서는 배우자와 법률혼한 상태로 일정기간 거주함을 바탕으로 국적취득이 가능하고, 이마저도 온갖 잡다한 관료절차를 거쳐야 한다. 수도꼭지를 틀면 오렌지 주스가 나온다는 식의 현실과 유리된 낭만적인 프랑스 애가를 부를 생각은 없지만, 프랑스 사회가 보장하는 육아 관련 정책과 교육 정책들도 부러울 따름이다.

  아직도 이 땅에는 아예 대화 자체가 성립되질 않는 답답한 가부장적 가치관에 사로잡혀, 그만의 잣대로 남들을 무자비하게 판단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이런 생각을 하는 나 조차도 이미 그들과 그다지 다를 바 없는 마초가 아니었나(나 역시 장남인 아버지 아래 한국에서 태어나 죽 자라온 장남이니까. 어쩌면 이건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고, 이해하려 애쓸 수는 있는 정도에 그치는 태생적 한계을 의미할지도 모른다)- 하는 생각을 했다. 그만큼 책 여기저기에서 머리를 뎅- 뎅- 울려대는 목소리를 읽고 들을 수 있었다는 말이다.

  읽어 볼만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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