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라클러의 맛있는 이야기

배낭여행

인간의 이기, 너덜한 플라스틱

  오늘자로 새로운 학기가 시작되었는데 등교 첫 날부터 추적추적 비가 내리고 있었다. 출근 시간과 겹치는 시간대에 지하철을 타니 매 역마다 꾸역꾸역 사람들이 밀려 들어왔다. 내가 서 있던 자리에는 도저히 끼어들 틈이 없는데도, 사정없이 파고드는 강인한 아줌마의 팔꿈치가 내 등 뒤에 얌전히 달라붙은 가방을 디밀어 뒤틀어댔다. 뒤틀리는 가방만큼 짜증스러움이 솟아났다. 유리창에는 사선으로 빗물이 그어붙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진, SKY-S300>

  모처럼 내 눈길을 먼저 끈 것은 우산을 슥 집어넣어 잡아당기면 비닐 봉투가 씌워지는 함이었다. 그리고 그 옆에 시간이 지날수록 무수히 쌓이는 폐 비닐들. 건물 밖으로 나올 때면 사람들은 미련 없이 우산에 씌워진 봉투를 벗겨 상자에 버리고, 옆 건물로 이동한 후에는 다시 새 봉투를 씌우고 있었다. 한 번 봉투를 씌우면 건물 간 이동시에도 봉투의 물기를 빼 가지고 다니다가 다시 씌우는 식으로 재활용을 할 수도 있을텐데 하는 생각에 불편함이 밀려왔다.

  불편함. 누구나 다방면으로 불편함을 감수하면서 살고 있지만 이런 경우의 불편함은 여타의 불편함과는 다르다. 이번에 새로 산 롤렉스 시계라며 시계 자랑하는 옆 테이블에 앉아 있던 우락부락한 남자(왠지 웃음이 나온다), 혹은 매일 아스피린 두 알씩 꾸준히 먹으면 건강에 좋다는 건강 잡지의 조언(그런다고 내가 먹을 줄 알고)이 가져다 주는 미묘한 불편함처럼 미간이 살짝 찌푸려지는 그런 류의 불편함이었다.  

  폐 비닐, 플라스틱 쓰레기의 위험성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한다. 북태평양 환류에는 쓰레기가 집중적으로 쌓이는 쓰레기 더미 지역이 있다. 그리고 그 범위는 한반도보다 크다. 실제로 이 지역은 과학자들이 '동쪽 쓰레기 더미'로 지칭하고 있으며 그물, 밧줄 따위는 물론, 이곳에 있을 것 같지 않은 물건, 예를 들면 부서진 욕조, 타이어까지도 서로 뒤엉켜 부유하고 있다. 공기와 물이 시계방향으로 소용돌이치면서 이 쓰레기 더미는 점점 더 그 크기를 더해간다. 생명체가 휩쓸려 죽기도 한다. 참치, 상어 등 커다란 물고기들은 그곳으로는 가까이 가지 않는다. 고작 우산 씌우는 봉투를 손쉽게 버리고 새로 씌우는 장면을 보고 북태평양 환류의 쓰레기 더미까지 글의 범주를 확장하는 게 거대한 망상에 불과할도 있겠지만- 난 왠지 자꾸만 생각이 났다.  

  제아무리 생분해성이라 할지라도 비닐 봉투든, 플라스틱이든 이제까지 과거 인간이 만들어낸 어떤 소재보다도 오랜 시간 그 형태를 유지한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덕분에, 후손들은 우리 시대의 유물을 쉽게 발굴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어느 땅을 파도, 어느 바다를 훔쳐도 플라스틱과 비닐을 쉽게 건져낼 수 있을테니까(우리가 선조의 유물을 발굴했을 때 느낄 수 있는 감정과, 후손들이 플라스틱 더미를 발굴하고 느끼는 감정 사이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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