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트맨은 다른 슈퍼 히어로들과는 확실히 다른 면모를 보인다. 초인적인 능력에 기반하는 것이 아니라 막대한 부에 자신의 능력을 기반하고 있기 때문에 차라리 좀 더 현실적인 어감을 형성한다. 전작 <배트맨 비긴즈>에서 배트맨의 과거와 그 기원에 대해 다루고 다져놓은 세계관 위에 이번 작품 <다크 나이트>는 깊고 진한 색깔로 그 이야기를 덧칠해 나가고 있다.
과거에는 히어로물이란, 화끈한 액션이 전부였다. 골치아픈 구조는 접어두고, 분명히 이등분할 수 있는 선과 악의 대립 구조 속에서 결국은 권선징악 이야기를 되풀이하는 철학 안에서 모든 결말이 매듭지어졌던 것이다. 관객은 편한 마음으로 영웅들의 액션을 감상하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그런 식으로 현실과는 동떨어진 채 철저히 영웅을 위한 세계의 틀 안에서 누가 봐도 나쁘다랄 수 있는 악당들을 쳐부수는 이야기는 자연히 실재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다크 나이트>는 섬세한 영화다. 안전하게 승리에 도취할 수 있는 영웅이 아니라 그 안의 복잡한 내면의 심리를 세밀하게 그려내고 있기 때문이다. 조커와 배트맨은 인간의 본질에 관해 시종일관 이야기한다. 돈에도, 자신의 목숨에도, 혹은 특정한 명분이나 이유도 없이 행동하는 조커는 예측할 수가 없다, 때문에 어느 악당보다도 더 곤혹스러운 존재로 확실히 자리매김하게 된다. 법의 시각에서는 조커 뿐만 아니라 배트맨 역시 악당으로 간주되며, 실제로 배트맨은 자신이 생각하는 신념을 위해서라지만 불법적인 일도 불사한다. 배트맨의 존재를 원치 않는 고담시 시민들의 반응 또한 혼란에 혼란을 더한다. 선악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것이다. 이렇게 고담시 전체는 선악의 구분이 불분명한 회색빛 일색이 된다.
영화가 상영되는 내내 선과 악의 불분명한 경계와 모호함은 그 색의 진하기를 더해간다. 소용돌이치는 선과 악의 양면은 어느 시각에서 바라보느냐에 따라 크리스천 베일을 악당으로도, 영웅으로도 만들어낸다. 절대적인 선도, 절대적인 악도 없다. 하비 덴트는 고담시를 악으로 부터 구해내겠다는 의욕으로 가득 찬 검사였지만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어긋나고 만다. 영화 내의 모든 캐릭터는 분명히 규정지을 수 있는 선악의 지대가 아니라 회색의 영역에 서있다.
2시간 30분 동안 배트맨과 조커는 서로를 명확히 구분지었던 거리를 좁혀나간다. 시간이 지날수록 배트맨(크리스천 베일)은 스스로에 대해 존재론적 의문을 던지게 된다. 여타의 히어로물과 달리 <다크 나이트>에서는 '배트맨'이라는 히어로가 악당을 통쾌하게 무찌를 수 있는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그려지지는 않는다. 도리어 감당하기 벅차고, 통제되지 않는 혼돈 속에서 선과 악이 뒤엉켜 죽음의 춤을 추는 것으로 막을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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