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제 영어 학습에 많은 도움이 되는 근간이기도 하지만, 많은 대학생들이 영어 공부를 적당한 핑계로 삼아 정신없이 몰입하게 만드는 미국 드라마(이하 미드). 어느 ‘미드 폐인’은 얼마 전 경찰서에 머리카락 한 가닥을 들고 찾아와 “배우자의 외도 증거를 가져왔으니 분석해달라”는 터무니없는 민원을 제기해 실소를 자아냈다고 한다(아마 CSI 시청자였나보다).
미드 DVD나 동영상 파일을 쌓아놓고 마우스를 굴리며 온종일 즐긴다는 뜻의 신조어 ‘마우스 포테이토(Mouse Potato)’라는 말을 심심찮게 듣곤 한다. 얼마 전 학교 교수님조차도(원어민) 저 신조어에 대한 언급을 짤막하게나마 하셨을 정도니까. 예전의 일본 드라마나 애니메이션에 심취한 이들을 바라보는 시선과는 다른 현상으로 보인다. ‘미드족’은 보편화되어 있고 그만큼 미국 드라마는 일상에 깊숙이 들어와 있기 때문이다.
출판시장에서도 이런 분위기를 일찌감치 파악하고 미드 열풍에 편승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미드잡학사전>이라거나 <미드 자막없이 즐겨라> 등의 책 제목이 눈에 들어온다. 판박이같은 뻔한 양상을 그려내고 있는 국내 TV드라마와 달리 미국 TV 드라마는 다양한 소재와 치밀한 사전 제작, 거대 자본의 투입으로 국산 드라마에 비해 대체로 뛰어난 완성도를 보이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내 경우에는 따로 드라마를 챙겨볼 시간이 없어서 주로 학과 시험이나 골칫덩이였던 중간 시험을 치르고 난 후에 드라마를 쌓아놓고 하루종일 시청하는 편이다. 드라마는 아니지만 시트콤이었던 <프렌즈Friends>는 5편 정도 보다가 그만 뒀고(재미있긴 한데 막 끌리지는 않았다), 그 다음으로는 <로스트Lost>를 봤는데 미스테리가 풀릴 듯 하면서 질질 끄는 듯한 구성에, 억지스럽게 짜 맞춘 듯한 느낌이 강해 중간에 어디에선가 그만 두었다.
그 다음으로 접한 것은 <프리즌브레이크PrisonBreak>였는데, 프랭크 다라본트의 <쇼생크탈출The Shawshank Redemption>이나 알렉상드르 뒤마의 <몬테크리스토 백작The Count of Monte Christo>를 상기시키는 작품이었다. 다만, 탈옥 이후의 각 개개인의 신상에 대해 세밀하게 접근해 보여준다는 면은 신선하게 다가왔다.
그런데 시즌1 초중반부에서 찰스가 고양이를 데리고 있는 모습을 보고 마이클 스코필드가 어떻게 고양이를 데리고 있느냐고 묻자 찰스가 "She's grandfathered back from the days ...(이하중략)"라고 대답하는 부분이 있다. 여기서 국내 자막팀이 grandfather를 그대로 직역해 '할아버지 조항'의 적용을 받는다고 자막 처리를 해버린 점이 눈에 띄었다(grandfather clause는 새로운 법이 효력을 갖기 이전에 제정된 법 조항을 유지하는 것을 의미한다).
마이클 스코필드의 웅얼웅얼거리는 발음이나 수크레의 거친 억양은 알아듣기 힘들 뿐더러 배경이 감옥이다보니 생소한 용어가 빈발해 개인적으로 영어 학습용으로는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인터넷 서핑을 하다보면 이 녀석을 영어 학습용으로 보겠다는 글을 심심찮게 보곤 한다. (그대는 아마... 해외 거주하는 분이거나 막강 내공의 고수이십니까 ㅠ)
<Skins>는 영국판 <Gossipgirl>이라 할 만한데, 영국의 10대들 이야기를 다루었다. 한국의 청소년 소재 드라마가 도덕 교과서적인 틀을 준수하는 선에서 현 10대들의 모습을 그리고 있는 반면, <Skins>는 영국의 10대의 생각과 생활을 적나라하게 전달하고 있다고 한다(모든 10대가 이렇게 산다는 말은 아니지만). <Skins>나 <Gossipgirl>이나 둘 다 내 취향은 아니라서 일찌감치 그만두었다. 얼마 전 아버지가 케이블 TV 채널을 돌리시는데 <Gossipgirl>이 방영되고 있어서 놀랐다. 한국에는 언제 들어왔지.
솔직히 난 <Supernatural>이 영어 학습에 도움이 된다는 말을 어디선가 주워들어서 첫회분을 봤다. 딕테이션을 해보려해도 둥둥둥 끼익 끼익 시익- 거리는 음산한 분위기를 조장하는 배경음악에 5분 넘도록 "끼아아악 꺅-" 거리는 비명소리들 속에서 대체 어떤 대사를 찾아서 받아쓰기를 해야 하는건가 의문이 들었다. 발음이 명료한 편이라 알아듣기는 쉬운 반면 급박한 장면의 연속인지라 대사가 많은 부분은 굉장히 빨리 내뱉는 경향이 있다. 1회만 보고 접었다. 공포물에 가까운 스릴러. 이우혁의 <퇴마록>이 떠올랐다.
요즘은 <위기의 주부들Desperate Housewives>을 보고 있는데 이게 또 재미가 쏠쏠하다. 일전에 미국의 영부인 로라 부시가 공식 석상에서 본인을 가리켜 ‘나야 말로 위기의 주부들이다’라는 말을 남겨 논쟁을 일으켰는가 하면, 오프라 윈프리가 ‘위기의 주부들’ 광팬임을 자처하기도 했다. 미국 중산층 가정의 겉과 다른 이면을 날카롭게 파헤치고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흥미진진한 미 중산층 아줌마들의 이야기이면서, 단순히 드라마를 보고 즐기는 수준을 떠나 한번쯤 생각해볼만한 '꺼리'를 많이 던져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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