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라클러의 맛있는 이야기

배낭여행

오르세 미술관, 그리고 고흐, 마네, 피카소 - 2007.7.18

  아침으로 Pains au lait를 먹었다. Pains au lait라고 해서 뭐 특별한 건 아니고 Pain이 빵, au는 전치사, 그리고 lait는 우유를 뜻한다. 그럼 그냥 우유빵인 것을 괜히 프랑스에 왔었네- 티 내느라 빵 봉투에 적혀있는대로 Pains au lait라고 쓴 것이다. 쩝쩝. 마찬가지로 Chocolate au lait는 우유가 들어간 초콜릿, 즉 밀크초콜릿이 되는 것이고, Cafe au lait는 우리가 흔히 말하는 카페오레- 진한 커피와 스팀 밀크를 섞은 음료를 뜻한다.

  우유가 듬뿍 들어간 프랑스 우유빵이 나와 동생 입맛에 잘 맞아 파리에 머무를 때 꽤 많은 양을 먹었다. 주먹만한 우유빵 12개를 포도쥬스와 함께 모두 비웠다. 빵 먹을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프랑스 빵맛이 정말 좋다(그런데 내가 빵을 워낙 좋아해서 국적 불문하고 빵이 있는 곳이라면 어느나라 빵이라도 맛있다고 생각할 것 같기는 하다).

  9시 30분에 오르세에 도착해 금방 입장할 수 있었다. 오르세 한국어 지도를 집어들고 인상파 이전 화가들의 작품을 보러 갔다. 루브르박물관의 한국어 지도는 삼성의 후원하에 이루어졌다고 표기되어 있었는데 오르세미술관의 인쇄물에는 그런 표기가 없다. 개인적으로 루브르보다 오르세 미술관을 더 좋아한다. 루브르에서도 '대관식'이나 '디에나'(이 그림, 정말, 매우, 매우, 매우 좋아한다 +ㅁ+) 같은 작품들이 있지만, 오르세의 모네, 마네, 르누아르의 화풍, 화법이 더 마음에 와닿는다. 생각할 수 있는 여지를 감상자에게 더 많이 던져주는 것 같다. 피사로와 시슬레의 작품들도 좋았고 고흐의 작품에서는 그의 열정이 느껴지는 듯 했다. 다작이라면 피카소 역시 빠질 수 없으나 꽤 많은 돈을 만져보기도 하고, 일곱명의 여자들 품을 거쳐갔던 피카소의 뒷 이야기를 알고 난 후에는 왠지 피카소는 물론, 그의 작품에도 눈길이 가질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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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궁핍함 속에서도 붓을 내려놓지 않고 끊임없는 열정을 동생 테오에게 보내는 편지에 절절하게 써내려갔던 고흐가 좋다. 난 고흐가 좋다. 재수 시절, 그리고 반수 시기에 차갑게 식은 김밥으로 끼니를 때우면서 고흐의 편지글을 모아 펴낸 책을 몇 번이나 읽었는지 모른다.

  반면, 피카소와 그의 일곱 여자들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그 여자들이 가끔 언급했던 그의 여성 편력이나 잠자리에 대한 이야기가 한데 어우러져 피카소의 작품을 볼때면 자꾸만 그런 뒷 이야기들이 떠오르곤 하는 것이었다. 큐비니즘으로 이어지는 그의 기법이 처음에는 진중함과 결합한 신선함으로 다가왔지만 피카소라는 사람 자체의 일생에 대해 알아가면 알아갈수록 그의 그림에 대항 흥미는 나날이 떨어져 나가기만 했다. 마치 그는 그의 일곱 여자들에게서도 찾지 못한 그 무언가를 그림을 통해 찾기 위해서 그렇게 다작多作을 해놓은 것은 아닐까 하는- 그런 생각도 했더랬다.

  여튼, 배고픔과 그날그날의 물감값을 걱정하는 물질적 여유의 부재 속에서도 그림에 대한 변함없는 열정을 고스란히 자신의 작품으로 승화시킨 고흐와는 다른 느낌이다. 피카소의 작품들을 오르세 입장료 외에 추가로 돈을 더 받고 전시하고 있어 두 화가에 대해 이야기해봤다.

이따금 너에게 습작이라도 몇 점 보내겠지만, 지금 작업하고 있는 유화가 너에게 보낼 만한 수준이 되고, 그것에 대해 의논할 정도가 되려면 거의 1년이 걸릴 것 같다. 그 점에 대해서는 미안하게 생각한다. 그러나 그 그림이 쓸모 있는 것으로 입증되는 날이 온다는 사실은 보장하마. 처음에는 별 볼일없던 것이 나중에 성공할 수도 있는 법이다.
무엇보다 내가 돈 버는 일에는 아무런 관심도 없다고 생각하지는 말았으면 좋겠다. 지금처럼 성실하게 노력하는 자세가 그 목적에 가장 빨리 도착하는 지름길이 아니겠니. 참되고 가치 있는 작품을 그리는 게 가장 기본이 되는 거니까. 그렇게 되려면 작품이 팔릴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생각으로 작업할 것이 아니라, 작품에 정말 훌륭한 것이 어떤 것이 들어있어야 할 테고, 그러기 위해서는 자연에 대한 정직한 탐구가 필요할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나중에라도 반드시 그 대가를 치를 것이다.

- 1882년 8월 20일, 테오에게, 빈센트 반 고흐

  정작 그는 37년간 지독한 가난을 겪으며 살았지만 1987년 런던의 크리스티 경매에서 <해바라기>가 3629만 2500달러의 거액에 경매되었다. 고흐가 살아있을 때 그가 그의 동생에게 보낸 편지에서는 자신의 그림이 인정받을 수 있을지, 스스로가 훌륭한 화가가 될 수 있을지에 대해 때때로 번민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하지만 그가 그의 편지에 '처음에는 별 볼일없던 것이 나중에는 성공할 수도 있는 법'이라고 언급한 것처럼, (어쩌면 안타깝게도) 지금에 와서는 '영혼의 화가', '태양의 화가'라는 칭호와 명성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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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두아르 마네. 《풀밭 위의 점심》, 사진을 찍지 않아 네이버 백과사전에서 가져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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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두아르 마네. 《올랭피아》, 사진을 찍지 않아 네이버 백과사전에서 가져왔다>

  정부가 주관하는 살롱전 심사 위원단의 고답적이고 보수적인 성격에 불만을 품은 젊은 화가들이 살롱전 심사 위원들에 의해 거절당했던 작품을 모아 전시한 것이 '낙선자 전시회'라는 이름으로 1863년에 열렸다.

  마네의 이 두 작품 또한 각각 낙선자 전시회와 2년 후 살롱전에 전시된 것이었는데, 본의 아니게 두 전시회에서 가장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게 되었다. 일단, 개인적으로 몇 달 전에 김중만 사진전과 관련한 포스팅에서 이런 스타일의 작품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는 점을 이야기했지만 여기에 소개하는 마네의 두 작품은 당시 이 작품을 둘러싸고 벌어진 해프닝이 꽤 흥미롭다.

  당시 마네의 <풀밭 위의 점심식사>를 처음 접했던 부르주아들은 이 그림이 자신들의 (암암리에 이루어진) 퇴폐적인 품행을 대중 앞에 적나라하게 드러낸 것은 아닌가 하고 뜨끔했었다. 그래서 이 작품을 두고 온갖 비난과 조롱을 일삼았다. 자신의 치부를 들춰냈을 때 나올 수 있는 반응이었다.

  급기야 <올랭피아>를 발표했을 때, 부르주아들은 비난과 조롱을 넘어 분노하기에 이르렀다. 격분한 나머지 들고 있던 지팡이와 우산으로 그림을 훼손하려드는 이들까지 나타났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채 노골적인 시선을 보내는 올랭피아 앞에서 당시의 관람객들은 혼란스러워했다. 일부는 수치심을 느꼈고, 다른 한쪽에서는 이 낯선 작품을 두고 수많은 논쟁을 벌이기도 했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차차 이 낯설고 새로운 경향과 작품에 대해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시선이 생기기 시작했고 지금 우린 오르세 미술관에서 이 그림들을 볼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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