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나와 한창 타다가 도시 전역에 있는 아무 임대소에 반납해도 된다. 당연히 매우! 매우! 편리할 것으로
보인다>
아침부터 계속 하늘 위로 전투기가 날아다녔다. 이걸 놓칠 내가 아니다. 난 게으름을 피우느라 잠을 퍼대자고 있는 동생에게 (일부러 방문을 박차며) 뛰어가 알렸다.
"야 전쟁났어! 외국인들은 무조건 추방이고, 한국에서 15세 이상 50세미만은 무조건 소집명령이
래. 빨리 짐정리해 지금 전투기 날라다니는거 안보여?"
잠시 당황하는 듯 하던 동생은 뇌 회전이 시작되면서 내게 완전히 낚여들지는 않았다. 동생한테 넌 군사훈련도 안받았으니까 총쏘는 법만 5분만에 알려주고 최전방에 총알받이로 내보낼지도 모른다고 잔뜩 겁을 줬었는데, 쩝.
카메라를 들고 바깥으로 황급히 달려갔지만 전투피 편대 퍼레이드는 끝나고 전투용 헬기들이 날아다닐
뿐이었다. 7월 14일은 혁명 기념일이라서 이런 행사가 있었다>
아침 일찍 주변을 돌아다니며 방을 구했다. 일단 우리가 하룻밤 묵은 곳은 시설이 너무 열악하고, 보안도 엉성했다. 방 열쇠도 클립 구부려 쑤시면 대체할 수 있을 것 같이 생겼고, 호텔직원은 여권을 보여달라거나 여권번호를 불러달라고 하지도 않았다. 가장 중요한 가격조차 하룻밤에 무려 87유로였다. 하루 자는 데 십만원이 넘는 돈을 이런 최악의 숙소에 들이부을 수는 없었다. 샤워실 문은 덜커덩거리던 녀석이 내가 잘못된 방향으로 힘을 주자 빠져버렸다. 다시 끼우려고 해도 끼워지지 않아 그냥 빠진채로 세워두었다.
내가 고작 이런 곳에서 잠을 자기 위해 작년 학기 중 내내 고생해가며 돈을 모은 것도 아니고, 20일간 먹고 싶은 것 덜 먹어가며 돈을 아낀 건 더더욱 아니다. 여기저기 돌다보고 별 두 개짜리 호텔을 찾아 구두로 예약했다. 우리 또래 청년이 리셉션에 있었는데 작년에 서울에 왔었는데 도시가 너무 크다고 했다(유럽에서 가장 큰 도시로 손꼽히는 파리도 '관악구'정도 크기에 속한다). 일단 우리 이름을 명부에 적어두고 12시에 짐을 가져왔을 때 현금결제를 하기로 했다.
바게뜨를 한아름 안고 가던 할아버지에게 다가가 얼굴에 보물이라도 발견한 듯 웃음을 띠고 어디서 사는거냐 물으니 웃으면서 손짓으로 알려줬다. 그리로 가니 현지인들을 줄을 서 바게뜨를 산다. 나도 바게뜨 두 가지를 각각 하나씩 샀다. 바게트 속살이 입 안에서 녹아내린다.
방을 구했다는 가벼운 마음으로 어제 잤던 호텔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론리플래닛에 실려있던 호텔을 발견했다. 지나가다 다른 골목 틈사이에 있는 것을 우연히 봤는데 어제 파리로 오는 TGV 열차 안에서 론리플래닛을 뒤적일 때 스쳐지나갔던 호텔 이름이 퍼뜩 매치된 것이었다. 리셉션에 가격대를 물어보고 방을 먼저 살펴보겠다고 해 방을 둘러보니 시설은 훨씬 좋은데, 가격은 더 쌌다. 게다가, 우리가 어제 잤던 호텔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딱 골목 하나 차이. 우린 바로 짐을 옮기고 일주일 분의 돈을 지불했다.
베르사유로 가기 전에 아까 구두로 예약하고 명부에 이름을 올려두었던 호텔에 들러 자초지종을 설명했더니 괜찮다면서 웃음을 터뜨렸다. 잠깐 이야기를 나누다가 호텔 로비에 있는 사탕바구니에 손을 넣어 사탕과 젤리를 한움큼 집어 바깥으로 나왔다. 하루종일 돌아다니다보면 분명 단 것이 땡기는 때가 올게다.
루브르 박물관 근처 일본 라면집에서 라면을 먹었다. 주문을 하면 그때부터 면을 삶아주는데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일본 라면맛을 보여주기때문에(한국에서 꼭 가보라는 사람이 있었다) 일부러 이곳까지 찾아온 것이었다. 한국에서는 제대로 된 일본 라면맛을 볼 만한 곳이 별로 없다. 딱 한 군데 내심 마음에 들어하고 있던 곳은 이화여대 근처에 있는 '아지바코'였다.
일본인 형제가 한국에서 생활하다 일본라면 맛이 그리워 한국의 유명 일본 라면집을 몇 군데 가봤지만 그리워했던 고국의 라면맛이 아니었다. 그래서 한국인들에게 진짜 일본 라면 맛을 보여주다는 마음에 열었다는 일본라면집이 바로 '아지바코'였다. 그런데 이 라면집도 올해 초 주인이 바뀌었다. 난 그이후로 아지바코를 방문하지 않았다.
조금 웃길 수도 있겠다. 하지만 난 멀고 먼 프랑스 파리에서 시원하고 깔끔한 국물 맛을 보며 아지바코를 떠올렸다. 정말 국물 맛이 제대로였다고나할까. 한국사람은 역시 국물이 있어야 뭔가 먹은 느낌이 나는걸까. 오랜만에 제대로 한 끼 먹은 듯한 포만감과 함께 메트로로 향했다.
RER탑승권은 유레일패스 소지자들은 무료로 제공되기 때문에 유레일 패스를 보여주고 베르사유로 가기 위한 RER권을 받았다(그런데 유레일패스 유효날짜는 커녕, 패스가 있는지 없는지 제대로 확인도 안하고 패스 소지자란 말만 듣고는 표를 그냥 내준다). RER은 냉방시설이 전혀 되어 있지 않아 몹시 더웠다. 한국의 지하철이 그리웠다. 30분동안 땀을 뻘뻘흘린 끝에 베르사유에 도착했다. 베르사유 안에는 화장실이 두 개뿐이고 유료라는 말이 가이드북에 적혀 있어 역 근처 맥도날드로 갔다.
여자들 화장실 줄이 대박이었다. 한국에서도 화장실 하나 때문에 이런 줄이 형성된다면 이건 기사감이다. 차라리 500원 돈 내고 유료 화장실 쓰고 말지 싶을 정도로 길게 선 줄.
베르사유는 영화와 권력의 무상함을 동시에 느낄 수 있는 공간이었다. 궁전과 정원 여기저기를 거니는 내내 디카프리오가 주연한(하지만 아는 사람은 거의 없는) Iron Mask가 생각났다. RER권으로 메트로를 같이 이용할 수 있는지 없는지 가이드북에 모호하게 표기되어 있어 RER에서 메트로로 환승을 시도했으나 표가 유효하지 않았다. RER과 메트로 둘 다 우리 눈에는 비슷하게 생겼고 철로로 달리는 역할은 똑같은 지하철이지만 운영하는 곳이 다르니 환승도 되지 않는 듯 했다.
거울로 이루어져 있다. 천정은 샹들리에가 빛을 발하고 있었다>
St.미쉘 역에 내려 세느강을 건너 숙소로 왔다. 호텔 주인에게 슈퍼마켓의 위치를 물어 과일과 요구르트, 100% 과일 쥬스 두 통을 샀다. 호텔 주인이 영어로는 아예 말할 줄도 모르고 알아듣는 것도 늦어 불편했다. 그래도 이제는 언어가 통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그다지 두렵지가 않다. 언어가 전혀 통하지 않아도 호텔 예약할 때 더블베드인지 트윈베드인지, breakfast는 포함인지 추가 요금extra charge이 필요한지, 에어컨air conditioner이 포함된 가격인지, 청소 시간은 언제인지 다 물어봤다.
언어는 달라도 사람 사이에는 뭔가 공통된 기저가 있다고 생각한다. 서로 전혀 알아듣지 못하는 언어로 내내 이야기를 하고 있어도 서로가 무슨 말을 하는 지는 알아듣고 다음 이야기로 넘어가는 게 전혀 어색하지가 않다.
해외에 처음 발을 내딛기 전에는 여행을 하려면 해당국가의 언어는 당연히 알아야 하는 건 줄 알았다. 인도에 가려면 인도어를 어느정도는 배워둬야 하고, 중국에 가려면 중국어를 알아야 하는 식으로 말이다. 그런데 사실은, 아니구나. 그래. 아니었다. 해당 언어를 알면 분명 편리하기는 하겠지만 해당 국가의 언어를 모른다고 해서 여행 기회가 있을 때 차일피일 미룰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 든다. 난 프랑스어 하나도 모른다(이렇게 당당하게 말하기엔 자랑이 아닌데;). 아 몇 가지는 아는 건 있다. TGV를 타고 프랑스로 넘어올 때 론리플래닛 맨 뒷칸에 있는 간단한 회화를 공부해두었다.
위(네)
농(아니오)
실 부 쁠레(부탁합니다)
메르시(감사합니다)
엑스뀌제 무아(실례합니다)
빠르동(미안합니다)
빠흘레 브 장글래?(영어 할 줄 아세요?)
세 꽁비엥?(얼마인가요?) -> 근데 현지인들은 그냥 꽁비엥? 이라고도 하더라.
아 꿸 레흐 빠흐 르 프로셍 뷔스?(다음 버스가 언제 출발하죠?)
↑ 여기서 '뷔스' 대신 바또나 트람웨, 혹은 트랭을 넣으면 해당 운송수단에 대한 질문이 된다.
바또(배)
뷔스(버스)
트람웨(트램)
트랭(기차)
아레 도또뷔스(버스 정류장)
갸흐(기차역)
우 에...?(...가 어디에 있나요? 영어에서 'How to get to ...? 와 같은 표현)
내 최대 실수는 프랑스어로 음식 관련 단어를 외우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프랑스에 여행갈 때는 소고기, 돼지고기, 토끼고기, 양고기, 버섯, 감자, 당근, 토마토, 치즈 종류.. 등등 각종 야채와 고기, 과일 이름정도는 공부해가는 것이 좋다.
돈은 있는데 메뉴를 볼 줄 모른다-? → 이거 은근히 심각한 자괴감에 사로잡힌다. 도저히 무슨 말인지 알아 볼 수 없는 외계어로 적힌 메뉴판을 바라보고 있어 보면 내 말이 무슨 말인지 실감할 수 있을 듯.
지금 생각나는 건 위에서 열거한 정도밖에 기억이 나질 않고(서울 생활 2달 차, 내 기억력의 한계는 뭐 이정도다. 쩝) 사실 프랑스에서도 내가 제일 먼저 쓰는 말은 주로 이것이었다.
안녕하세요~ (실례합니다~) 혹시 영어 할 줄 아세요?
이렇게 묻고 상대방이 '위' 혹은 '예스'라고 대답하면 그때부터는 그냥 영어로 말했다 -┎ 벨기에에서 홍합요리를 먹을 때 손짓만으로 의사 전달을 완료할만큼 절정 귀차니즘을 갖춘 동생에게는 두 가지 프랑스어 표현을 일단 외우라고 했다. 동생은 자꾸만 귀찮게 하는 나를 진정시키기 위해 열심히 외웠다.
"오 세꾸흐! 즈 므 쉬 제갸레"
뇌가 있다면 까먹지 말고 꼭 숙지하고 있어야 한다면서 몇 번이고 물었다. 정말 완벽하게, 이 표현만큼은 10년이 지나도 기억할 수 있을 것 같다는 판단이 들었을 때 저 프랑스어 표현의 의미를 동생에게 일러줬다.
즈 므 쉬 제갸레 = 길을 잃었어요.
내가 준비한 마지막 한 마무리 대사를 먹이는 것을 잊지 않았다.
"너에게 꼭 필요한 프랑스어 표현이야, 최대한 절박한 표정으로 저 표현을 외치도록 ㅋㅋㅋㅋ"
세상 모든 형, 오빠, 언니, 누나들의 낙 중 하나는 동생을 놀려먹는 거라고 생각한다. 이 글만 보면 다른 사람 눈에는 악덕 형아로 보일 수도 있겠지만 사실 난 다정다감한 (동생이 이 글을 읽으면 안되는데) 형아다. 내일 아침에 먹을 빵도 한가득 샀다. 주스는 한 통에 0.6유로였다. 한국에서라면 100% 과즙 음료는 4000원은 할텐데 뭔가 최대한 많이먹고 봐야할 것 같은 땡잡은 느낌이었다. 맛도 진하다. 포도주스가 마음에 쏙 들었다. 망고맛 요구르트는 한국에서 찾아보기 힘든 아이템인데 이거이거 '득템'이라고 해야하나? 진짜 망고 속이 요구르트 한통 전체에서 1/3은 차지하고 있어 최고의 맛을 보여주었다.
"부에니시모!(최고입니다)"
↑ 사실 이건 스페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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