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라클러의 맛있는 이야기

배낭여행

일상 아닌 일상, 로마 - 2007.7.10

  왜인지는 모르겠다. 여행하는 내내 부모님께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나혼자 좋은 것 보고, 듣고, 느끼고, 맛있는 음식을 먹는 호사를 누리고 있어서 그런 건지도 모르겠다. 크로아상과 달콤한 애플 파이에 커피 한 잔을 마셨다. 아침에 먹는 파이 한 조각의 맛은 기가 막히다. 방금 막 구워 낸 애플 파이는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한 조각이 적당했다. 그보다 덜 먹으면 뭔가 먹다 만 듯한 느낌이, 더 먹으면 알수 없는 비대감이 복부에 팽배해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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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양한 종류의 피자를 파는 곳. 이탈리아 요리 체인점인데, 스페인에도 진출해 있다고 한다. 이탈리아
  정통 스파게티를 4~11유로 정도, 피자는 3~9유로 정도에 맛 볼 수 있다. 사진은 각각 낮과 어둑어둑해
  질 무렵의 저녁에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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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호등이 있거나 없거나 건너고 싶을 때 건너는 로마의 모습이 무척이나 정겹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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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메뉴를 골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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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자 패스트푸드점. pizza&vizi. 떼르미니 역 내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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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자 판타지. 환상적인 피자 맛을 볼 수 있는 곳. 가격은 싸지 않다. 하지만 비싼 것도 아니다>

  오늘은 카메라를 어깨에 메들고 매번 옆구리에 끼고 다니던 지도도 없이 길을 나섰다. 재래시장을 휘휘 돌아보다가 종이봉투에 과일을 골라담는 이와 과일을 담아주는 이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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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점심은 론리플래닛에 소개된 Triniti에서 에그 파스타, 모듬 소시지, 와인 두 잔을 시켜 먹었다. 맛도 훌륭하고 인테리어도 뛰어났다. 면발을 포크로 말아 입안에 넣으니 약간의 버섯 향과 올리브오일, 그리고 풍부한 계란의 질감이 밀려온다. 동생이 선택한 메뉴인 모듬 소시지는 에러였다. 우린 통통하게 살이 오른 반지르르한 독일식 소시지를 상상했지만 접시에 담겨온 소시지는 말린 소시지였다. 짜고 질기다. 윽- 사진조차 찍지 않았다-_- 현지인들도 많이 오는 곳이라 서비스와 맛은 훌륭했지만(모듬 소시지 빼고!!) 가격이 제대로 비쌌다. 이제까지 로마에 머무른 기간 중 먹은 식사 중 단연 최고 비용의 지출이 감행되었던 한 끼였다. 하지만 이런 생각도 소믈리에가 와인 코르크를 멋지게 따는 모습을 보면서 기억 저편으로 사라져버렸다.

  '정말 훌륭한 곳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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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마 최대의 에노테카(와인전문점) Trimani. 우린 이곳에서 점심을 먹었다. 다양한 현지 와인을 둘러보
  고 구입도 가능하며, 파스타와 수프도 팔고 있다>

  내일은 피렌체로 이동한다. ESI로의 이동은 추가비용이 들기 때문에 최대한 유레일패스만으로 탑승가능한 구간을 이용하기로 했다. 덕분에 일찍 일어나 IC를 타기로 했다.

  일찍 잠자리에 들기 위해 4시 30분에 Conad와 Sma 슈퍼마켓에 들러 바나나 요구르트와 모듬과일, 피자 2조각, 그리고 현지인들이 몰려 많이들 집어들길래 나도 덩달아 집어온-_- 따땃한 바게트를 계산했다. 이탈리아 바게트 맛이 정말 좋았다. 바게트는 프랑스에 가면 먹어보리라 다짐하고 있었는데 생각해보니 이곳은 이탈리아다. 그런데 겉은 바삭하고 속은 부드러운 이탈리아 바게트 맛도 훌륭하다. 가운데를 잘라 야채와 참치를 끼워먹으면 정말 최고의 맛을 보여줄 것만 같았다. '이럴 줄 알았으면 야채와 참치까지 사올 걸' 연신 중얼거리며 바게트를 씹어 먹었다. 이런 내 맘을 아는지 모르는지 동생녀석은 옆에서 계속 자전거 노래를 부르고, 자전거 이야기를 한다. 동생은 모르겠지만 난 동생의 이야기에 전혀 귀를 기울이고 있지 않다. 내 마음은 이 바게트를 어떻게 먹으면 잘 먹었다 소문이 날까 이리 저리 궁리하고 있을 뿐이었다.

  다양한 인간상을 접하면서 한국으로 돌아가면 무엇을 준비할지, 어떤 준비를 해나가야 할 지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 이제 계획한 여행 일정도 1/3 정도가 남았다. 내일 피렌체로 이동하는 4시간 동안 간단한 프랑스어 회화 공부를 해두어야겠다. 한국에 있을 때 유럽의 역사, 미술, 음악사 등에 대한 공부는 얄팍하게나마 해두었는데 정작 각국의 회화는 전혀 공부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못내 아쉽다.  

  독일에서는 공영 프로그램에서조차 '우리 영어 공부 좀 합시다'라고 외치고 있고, 유난히 자국어에 대한 자부심이 강한 프랑스에서조차 영어교육을 강화하고 있다고 한다. 스위스인들은 스위스 정부에서 지정한 공식어 4개중 2~3개는 물론 영어까지 능숙하다는<= 이런 이야기들로 날 안심시켰던 많은 이들의 얼굴이 하나하나 떠올랐다. 젝일.

  하지만 내가 직접 경험한 유럽은 전혀 영어로 의사소통할 환경이 구축되어 있지 않았다. 독일에서는 영어로 길을 물어도 투박한 독일어로 '난 영어 모릅니다' 소리를 들어야 했고, 벨기에에서는 호텔 직원조차 영어로 말하고 들을 줄 몰랐다(그래도 별 두 개짜리였는데!). 이탈리아에서는 저번 포스트에서도 말했지만 젊은 이탈리아인 커플은 물론, 경찰도 bank를 알아듣지 못했다. 그리고 뭐? 스위스인들이 영어를 잘한다고라고라고라- (폭발 ㅋㅋ)

  난 스위스 슈퍼마켓에서 물을 사기 위해 한참(...은 아니고 5분 정도)을 이야기해야했다. 미국식발음(워러r), 영국식발음(오우터), 그리고 토종한국식발음-_-(워터) 모두 통하지 않았다. 직원은 내내 고개를 갸우뚱할 뿐이었다. 이 난관은 어이없게도 내 비장의 카드, 그냥 우리 말! "물"이라고 하는 데에서 종결이 났다.
  "물"

  아무리 생각해도 Mules(물르; 홍합)과 헷갈릴 것 같은데 어떻게 이 대목에서 내가 원하는 게 물이라는 것을 알아들었는지 모르겠다. 사실 이건 아직까지도 미스터리.

  하기사, 독일에서 공익 프로그램에서까지 '우리 영어 공부 좀 해요'라고 외쳐대는 건 실상 독일인들은 그만큼 영어를 멀리한다는 사실의 반증일게다. 나중에 한국에 와서 영어 교육 관련 논문을 읽으면서 알게 된 내용은 프랑스의 영어 교육 환경은 독해와 문법 교육에 치우친, 게다가 영어 교사들조차 간단한 영어 회화가 안되는, 놀라울 정도로 한국과 유사한 영어교육 환경이라는 것이었다. 이탈리아에서 10년이 넘도록 살며 대학과 대학원 과정을 마친 이는 이탈리아인 대다수의 머릿 속에는 '우리말만 할 줄 알아도 먹고 사는데 지장이 없는데, 내가 왜 영어를 공부해야 하지?' 라는 의식이 있다고 이야기해주었다.

  결론적으로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이거다. 유럽 여행을 준비하는 사람들은 여행을 대비해 영어 공부한다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는데, 절대, 네버, 그럴 필요 없다는 것이다-_- 적어도 내가 돌았던 여섯 개국; 영국, 프랑스, 독일, 스위스, 이탈리아, 벨기에 에서는 영국을 제외하면 영어를 제대로 쓸 기회가 없었다. 여행객과 수다를 떨었던 경험을 높이 산다면 영어 공부의 필요성이 생기긴 한다. 그런데 뭐, 여행객들과 이야기할 때나 호텔 직원, 공항 직원들과 이야기할 때야 영어를 쓸 수 있지만 정말 순수 현지인과 대화할 때는 현지어에 대한 지식이 필요하다는 말이 하고 싶다.

  자려고 누워있는데 너무 배가고파 떼르미니 역에 있는 간단한 음식점인 Moka에 가기로 했다. 동생녀석은 로마에 머무르는 내내 "예쁘다 예쁘다"했던 호텔 리셉션의 누나(?)와 사진을 찍겠다며 머리를 다듬고 있다. 몇 벌 가지고 오지도 않은 주제에 옷도 이리저리 재보고 있다. 내 동생이지만 정말 웃기는 녀석이다. 옷매무새를 가다듬으며 던지는 멘트가 대박!

  "첫 데이트를 나서는 남자의 기분으로..."
  "향수없나 향수- 향수 주어-"

  웃긴 녀석일세! 근데 사진은 어떻게 찍게? 난 이 무거운 카메라를 네놈 자슥 엽기 사진이나 찍으려고 가져온 것이 아니여- 라고 허둘리는 내 장난 섞인 말에 쥬르륵 "형님! ㅠ ㅠ" 하며 매달리는 동생을 데리고 밖으로 나갔다.

  Moka에서 참치 샌드위치를 먹고 호텔 리셉션에서 결국 동생은 거사를 치뤘다 -_- 프라이버시 상 본인 사진은 올리지 않겠지만 내가 보기엔 대체 뭐가 예쁘다는 건지 잘 모르겠다. 뭐 동생은 방으로 돌아와 꽤나 LCD를 들여다 본 걸로 보아 동생 눈엔 예쁜가보다. 이후 한국에 돌아온 후에도 종종 이탈리아에 두고 온 '그녀' 운운하며 동생을 놀려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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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떼르미니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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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밤 중에 배가 고프다며 갔던 Moka. 다양한 샌드위치와 주류를 팔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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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가 묵었던 호텔 옆에 있는 레스토랑. 그리고 거리의 악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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