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우리 객실 창문을 활~짝 열어봤다. 말 그대로 활~짝 열렸다. 혹시나 하고 기대해봤지만 역시나 방충망 따위 존재하지 않는다. 밤에 이렇게 문을 열고 나면 온갖 곤충들의 향연을 볼 수 있을터.
"그래, 이건 문 꼭꼭 닫아 잠그고 에어컨디셔너(Air Conditioner) 사용료를 추가로 지불하라는 호텔 측의 농간이야. 하지만 우린 고작 이정도에 질까보냐. -_-"
나와 동생이 고안한 방법은 호텔측에서 제공한 샤워용 수건(호텔마다 다르지만 이 호텔에서는 보통 우리가 평소에 쓰는 크기의 세안용 수건과 몸을 칭칭 감고도 남을 커다란 크기의 샤워용 수건 두 가지를 제공했다)을 옷핀으로 이어고정한 후 창문을 열고 창문 틈새마다 수건 모서리를 잘 끼워고정하고, 바람에 날리지 않도록 밑부분은 무게감 있는 가방으로 밀착시키는 것이었다. 하하하- 말로는 잘 설명이 되지 않지만 어찌되었든 우린 우리가 생각한 기발한 방법에 자축하며 잠자리에 들었다.
우리가 세운 전략의 효과는 정말 좋았다. 로마에 온 첫날에는 이 방법을 생각지 못해 더위를 쫓느라 잠을 설쳤는데 지난 밤은 조금 춥다고 느낄 정도였다. 당연히 이 무식한 방법은 호텔 청소 아가씨가 보면 얼굴 누런 동양인들의 무식하고 교양없는 행동으로 비춰질지도 모른다는
셔츠 가이는 여자친구와 함께 스위스에서 기차를 타고 이탈리아에 놀러왔다고 했다>
회에서는 전광판 보는 법을 설명해주기도 한다는데 굳이 설명 들을 필요 있나 싶다. 아무런 배경지식 없
는 상태에서 봐도 무슨 말인지 이해된다. 한국 철도망과 전광판 표시내용은 비슷비슷하다>
나폴리로 가는 열차에 올라 컴파트먼트에 앉았다. 유레일패스를 이용해 추가 요금 없이 탑승할 수 있는 열차를 골라 타느라 생각보다 늦게 출발했다. 나폴리에 도착하니 역 앞에 택시가 정말 많다. 햇볕이 로마보다 따갑다. 버스 1회권을 1유로를 주고 구입해 R2버스에 올라 펀칭기계에 버스표를 집어넣었다. 사람들이 점점 많이 들어차기 시작한다. 버스는 10분이 지나도록 출발할 기미를 전혀 보이질 않았다. 관광객들은 들뜬 목소리로 잡담을 나누고, 현지인들은 제각기 심드렁한 표정을 한우물씩은 짓고 있다. 이럴때는 언제 출발하냐고 묻거나, 언제 출발할까? 이러면서 한국말 통하는 사람끼리 이야기하는 것보다는 현지인들을 따라서 덩달아 심드렁한 표정을 짓는게 좋다는 게 내 중론이다.
가이드북에 실리지 않은 식당은 맛집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은데, 가이드북에 언급되어 있지 않아도 사람들이 바글바글한 식당은 십중팔구 그 지역의 맛집으로 간주하는 게 당연한 수순 아닌가. 실패할 확률도 거의 없다. 일단 사람들이 북적이는 걸 보고 들어섰는데 메뉴를 잘 모르겠으면 사람들이 가장 많이 먹는 걸로 달라고 하거나 가장 자신있는 요리를 달라고 하면 얼마 간의 시간이 지난 후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배를 쓰다듬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난 이래서 여행이 좋다. R2버스에서 내려 얼마 걷지 않아 발견한 현지인들의 길게 줄을 선 곳. 그래 오늘 점심은 저 곳이다.
그렇게 발견한 Chao Pizza에 어렵사리 들어갔지만, 실내에서조차 길게 줄이 늘어서 있어 꽤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마르게리따 피자 빅 사이즈 한 판(7유로)을 받아들었다. 그리고는 그 옆의 광장까지 피자를 들고 가 베어물었다. 오오- 이건 베네치아에서 흡족해했던 마르게리따와는 또다른 맛을 보여준다. 도우는 좀 더 두껍고 한입씩 베어물 때마다 토마토 과즙과 으깬 토마토가 묵직하게 씹혀든다. 아니다. 아니다. 이런 얌전한 문체로는 도저히 이 느낌을 설명할 수가 없다. 그래서 인터넷을 뒤져 당시 피자 한 입을 베어문 우리의 표정을 적절히 대변해줄만한 그림을 찾아 조금 손을 봤다.
5분걸린다고 해놓고 10분 15분이 넘도록 피자가 나오지 않은 것만 빼고는 정말 매력적인 피자집이었다. 이탈리아 남부의 풍부함이 토마토 속에 오롯이 배어있다.
피자를 한 입 베어물고 있자니 생각나는데, 이탈리아와 한국엔 비슷한 면이 있다는 것이다. 이탈리아 역시 경제적으로 남북이 갈라져 있다는 것. 북부 이탈리아는 경제적으로 앞서있지만, 남부 이탈리아는 그렇지 못하다. 당연히, 이러한 격차로 인해 발생되는 사회적 문제도 만만치 않다.
나폴리는 남부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도시로 음악과 해안이 유명하고, 사랑하는 여인을 찬미하는 노래 '오 솔레미오'(아이러니하게도 이 노래는 이탈리아 북부에 있는 베네치아에서 더 많이 들을 수 있다), 그리고 도둑이 유명하다. 나폴리는 다양한 문학가들의 표현을 빌자면 신의 선물이라고 할만한 날씨와 토양을 바탕으로 풍부한 문화유산과 넉넉한 인심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불과 10여년 전까지만 해도 나폴리는 더럽고 불결한 도시에, 매우 위험한 무법천지로 낙인찍혀 관광객들이 기피하는 곳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의 난 한 입 베어문 피자에서 남부 이탈리아인 특유의 낙천적인 성격과 풍부한 질감의 토마토를 맛 본 것만 같아 무척 기분이 좋다.
우린 피자를 먹고 아말피 해안의 눈부신 포말과 함께 눈부신 햇볕을 쬐며 걸었다. 카스텔 델로보(달걀 성이라는 뜻)와 그 옆으로 보이는 해안, 연인들의 모습(여기까지는 좋았다), 그런데 수많은 관광객들을 바로 앞에 두고도 아무런 망설임 없이 펼쳐지는 연인들의 애정표현.... .... -_-^
먹고 나니 이젠 후속타가 따라온다. 유럽에 가본 이들은 누구나 몇 번씩 동일한 문제에 봉착했을 것이다. 바로 화장실 문제.. ...
한국에서는 지하철역이나 큰 건물, 카페, 하다못해 피시방에 가도 화장실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지만 유럽에서는 지하철이나 기차역 화장실은 유료, 길거리에 세워진 이동식 화장실 역시 동전을 넣어야 이용할 수 있는 구조로 되어 있어 생리적인 욕구를 해소하는 데에 대략 600원 가량 돈이 들어간다.
아직 유럽을 방문하지 않은 이들을 위해 몇 가지 팁을 알려주자면, 맥도날드, 기차를 들 수 있다. 유럽 도처에 있는 맥도날드에 있는 화장실은 무료이고 점원 눈치를 볼 필요가 없기 때문에 굳이 뭔가 구입하지 않고 화장실만 들어갔다 나와도 된다. 문제는, 나폴리처럼 관광객들이 들끓는데 화장실이 있을만한 시설이 근처에 없다- 이러면 맥도날드에 들어서자 마자 화장실 줄이 엄청나게 길게 형성되어 있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해외 여행객들 역시 600원씩이나 주고 유료 화장실을 쓰느니 줄을 서겠다는 심리인 듯 싶다. 그리고 기차는 기차 안에 있는 화장실은 돈을 받지 않기 때문에 기차에 막 탔을 때나 내릴 때는 한번쯤 스스로에게 되물어보는 것이 좋다. 화장실을 한 번 더 갔다 올 것인가, 그냥 내릴 것인가. 이런 식으로 유럽에서 보름 이상 돌아다니면 이제 맥도날드를 보면 먹을 것보다는 '화장실에 갔다 올까 말까' 하는 생각부터 난다.
우리는 나폴리에 있는 맥도날드를 발견하고 별 생각 없이 들어갔으나, 심하게 긴 줄을 보고는 에이 별로 급하지도 않은데 천천히 구경하고 오는 길에 들르자- 하는 마음에 카스텔 델로보에 올라갔다. 문제는 여기부터였다. 동생이 갑자기 급하다는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화장실이 어디있는지 찾기조차 힘든 구조로 되어있는 이 달걀성. 무작정 꼭대기까지 올라가니 드넓은 대해가 보인다. 세계 3대 미항이라 불리는 나폴리의 바다다- 라고 감탄하고 있을 때 동생의 급한 표정이 눈에 들어왔다. 킁킁, 그런데 어디선지 모르겠는데 이 꼭대기층에서 지린내가 나고(특히 구석 부분마다), 주위를 둘러보니 아무도 없다 -_- 적당히 둘러쳐진 테두리 라인은 성인 남자의 허리까지는 와있어 적당히 가림막;; 역할을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ㅇ ㅑ! 정 급하면- "
그순간 동생도 나와 똑같은 생각을 한 것일까-_- 내가 말을 꺼내기도 전에 이미 적당한 구석으로 가서 누가 볼새라 냅다 물줄기를 쏟아내고 있는 동생의 뒷모습이 보인다.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그순간 난 말없이 내 니콘 D80카메라를 부여잡고 동생의 개념도 교양도 출타중인 몰지각한 뒷모습을 찍어댔다.
찰칵-찰칵.
셔터음을 들었는지 못들었는지, 일을 마치고 뒤돌아서는 동생의 표정은 환한 미소 그 자체!
난 동생의 흔적-_- 이 있는 구석으로 달려가 그 흔적까지 모두 기록으로 남겼다. 표범이나 멧돼지의 응가를 촬영하는 내셔널지오그래픽 사진작가들의 심정이 이런 것이었을까. 이성이 있는 인간의 행위라기보다, 난 애니멀에 상당히 근접한 동생의 흔적에 내가 가지고 있던 물을 부어 최대한 희석시켜놓고 돌아섰다. 나폴리의 강렬한 햇살에 얼마 못가 흔적도 없이 증발해버렸을테지만 내 사진 기록들은 아직도 이미지저장장치에 고스란히 남아있다(차마 이건 블로그에 게시하지 못하겠다-_-). 이건, 먼 훗날 동생이 자녀를 공부하지 않는다거나 뭐 기타 자질구레한 문제로 구박할 때 위로용으로 제공할 참이다.
"괜찮아 괜찮아, 큰 아빠가 재미있는거 보여줄까? 이 사진이 말이야, 스무살 먹은 네 아빠가 이탈리아 나폴리까지 가서 유적지에다가 거침없이 행한 무개념한 행위 사진을 큰 아빠가 몰래 찍어둔건데..."
음하하, 생각만으로도 뿌듯하다.
뽈레비시토 광장의 산 프란체스코 디 파올라 성당(이름 정말 길다)에 들어갔더니 한창 결혼식 주례사가 이어지고 있다. 하객의 수가 단촐하다. 가까운 이웃과 친한 친구 몇 몇만 초대하는 이탈리아의 결혼식을 직접 보게되다니 기분좋다. 이런 예상치 못한 수확은 언제나 기분이 좋다. 어느 나라, 어느 문화에서나 많은 이들의 축복이 어리는 순간이다. 나 역시 그들의 행복을 위해 잠시나마 기도한다.
봉 왕가의 페르난도와 까를로 3세의 것이다. 성당의 스케일은 왼쪽 아래에 있는 사람으로 가늠해볼 것>
아말피 해안이 대단히 매력적이라 언젠가 이곳에 꼭 다시 와 바닷 속에 뛰어들고 싶다. 이곳에선 튜브 같은 보조도구들을 볼 수가 없다. 그만큼 다들 수영을 잘한다. 옆 사람과 자유롭게 이야기하면서 수영을 즐기는 모습을 보니 튜브가 필요없을만도 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탈리아에서 빙과류를 먹을 때, 젤라또는 한국보다 싸지만 얼음과자는 비싸다. 특히 우리가 흔히 슬러시라고 부르는 포도맛이나 파인애플맛이 나는 음료에 물을 부어 알짝 얼린 듯한 빙수는 한국에서 300원정도면 먹을 만한 양을 주면서 우리돈 2천원정도를 받는다. 이탈리아에서 먹을 만한 건 젤라또 외에 즉석에서 얼음을 갈아 내가 원하는 맛의 시럽을 끼얹어주는 형태의 얼음과자가 있다. 목이 말라 물을 사려는데 나폴리 역과 그 근처에는 이렇다할 커다란 슈퍼마켓이 없다.
슈퍼마켓을 찾느라 나폴리 시내를 돌아다니는 도중 누군가의 하얀 핸드백을 들고 웃으며 어디론가 바삐 달려가는 남자를 본다. 한 건 했구나. 나폴리 도둑의 악명은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나폴리 도둑은 나폴리 항에 정박해 두었던 미국 군함까지 훔쳐가버린 적이 있었지만 미군은 끝끝내 도둑맞은 군함을 찾지 못했던 일도 있었다. 차 안에 귀중품을 놔두는 행위는 당신께 공짜로 주겠다는 말과 동의어이며, 불편하지만 잠시 차를 주차할 때는 옷가지, 가방은 물론 차량에 설치한 네비게이션까지 떼어내야 한다.
떼르미니역 지하에 있는 Conad에서 각종 과일을 사들고 왔다. 이탈리아는 햇살이 강해서 그런지 과일들이 하나같이 당도가 높다. 청포도의 굵은 알, 골든애플, 멜론에 이르기까지 그야말로 침이 쏙 나오게 만드는 당도와 단단한 밀도를 보여준다.
세트메뉴가 5~7유로 정도로 피자 한조각 크기가 굉장히 커 한 끼 식사 대용으로도 충분하다>
다. 15세기 스페인에 의해 점령당하기도 했으며 지금은 내부를 박물관으로 꾸며 사용하고 있다>
다. 나폴리에 가면 꼭 먹어볼 것. R2에서 내리면 머지않아 금방 보인다. Chao는 '챠오' 혹은 '쨔오'라고
발음하며 친한 사람끼리 하는 격식차리지 않은 인사, 혹은 식당 주인이 손님에게 안녕히 가세요, 감사
합니다 정도로 사용한다. 즉 영어로 하면 'Hello, Pizza' 'Hi, Pizza' 정도가 되지 않을까?>
다. 이곳사람들은 보통 한 조각으로 점심을 때우는 듯 하나 우린 빅 사이즈 한 판을 먹어치웠다. 나폴리
하면 '나폴리 피자' 아냐? 라고 하시는 분들이 계시는데 우리가 종종 말하는 나폴리 피자가 바로 '마르게
리따 피자'다. 그 맛은 직접 먹기 전엔 정확히 설명할 수 없다. 꼭 먹어볼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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