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저녁이 되면 실내가 에어컨이 꼭 필요한 온도가 조성된다. 마치 적당한 군불을 땐 것만 같다. 영국, 스위스, 벨기에, 독일 등지보다 남쪽으로 내려왔다는 사실이 실감이 난다. 날씨는 흐릴 때가 드물고, 하늘은 하루종일 파랗다. 그렇지만 에어컨 이용료는 하루에 10유로. 환율로 치면 1유로가 1250원정도니 로마에 머무르는 일주일간 에어컨을 켜고 살면 9만원정도 추가 요금이 지출된다. 잠시 고민을 하기도 했지만 우린 당연히 일주일깐 찜통 속에서 버티며 9만원을 아끼는 길을 택했다. -_-
성 베드로 성당에 가기 위해 일찍 일어나 씻었다. 적어도 8시 30분에는 줄을 서야 한다는 가이드북 설명 때문에 살짝 조급했다. 원데이 티켓(이거 하나 구입하면 하루종일 버스와 지하철을 이용할 수 있다. 가격은 4유로)을 사고 메트로(지하철)을 탔다. 지하철은 역시 서울만한 곳이 없다. 로마의 메트로는 지저분하고 낡았다. 노선은 2개 뿐. 로마 지하에는 아직도 발굴하지 않은 유적, 발굴 중인 유적이 많아 메트로를 두 개 노선밖에 만들지 않았다고 한다. 신기한 것은 에스컬레이터가 움직이는 속도와 에스컬레이터 손잡이가 움직이는 속도가 달라 재차 손의 위치를 적절히 바꿔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일부러 적절히 긴장 타면서 걸어다니라고 이렇게 만든 건지 기술력 부족에서 기인하는건지 분간이 가질 않는다. 좋게 해석하고 싶다. 졸면서 에스컬레이터 타면 사고날까봐 일부러 이렇게 만들어놓은거라고. 로마도 유럽의 다른 도시와 마찬가지로 역과 역 사이의 구간은 상당히 짧아 출발 10초 후 다음 역에 도착하기도 하며, 문열림 버튼을 눌러야 문이 열린다. 당연히 버튼을 누르지 않으면 역에 도착해도 문은 굳게 닫혀있다가 잠시후 출발해버린다.
그림을 보면 내 하체가 아픈 것만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바티칸의 줄이 심하게 길어 왜 가이드북에서 일찍 가서 줄을 서라고 했는지 알 것 같았다. 태양은 따가운 햇살을 날 향해 마음껏 쏘아대는데 줄은 끝이 없었다. 줄을 서고 싶어도 줄의 끝부분이 보이질 않아 계속 걷고 걸은 끝에 길고 긴 줄 끝을 찾아 간신히 줄을 섰다. 아랍계인들은 줄 선 사람들의 행렬을 따라다니며 물과 주류를 팔고 중국인들은 한국의 지하철에서 천원에 파는 접을 수 있는 밀짚모자를 10유로에 팔고 있었다(햇빛이 강해서 그런지 비싼가격에도 불구하고 이게 상당히 잘팔린다). 까만분들은 각종 모조 명품 선글라스를 진열해두고 팔고 있었다. UV코팅이 되어 있지 않아 도리어 눈 건강에는 해로울 것이지만 흥정만 잘하면 명품 선글라스와 똑같은 외관을 가진 모조 선글라스를 저렴한 가격에 구입할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이라 그런지 이녀석도 잘 팔렸다.
고 팔고 있음에도 불티나게 팔렸다. 바티칸에 들어가기 위한 긴 줄이 늘어져 있다>
20유로를 내고 8유로짜리 티켓(학생 할인 적용) 두 장을 받고 룰루랄라 구경하다 잔돈 4유로를 받지 않았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고 황급히 티켓창구로 갔지만 내게 표를 팔았던 9번 매표소의 문은 굳게 닫혀있었다. 대체 내가 왜 거스름돈 받는걸 깜박해버린 걸까. 창구 점원은 점심을 먹으러 간 것 같았다. 옆 창구로 가서 내 사정을 설명했더니 내가 표를 샀던 매표소 문이 열릴 때까지 기다리라는 말만 반복할 뿐이었다. 20분을 기다렸지만 9번 매표소 직원은 돌아오지 않았다. 다시 옆 창구 문을 두드리며 9번 매표소 문 언제 열리냐고 물었더니 이미 퇴근한거라고, 내일 문을 열거라는 말을 했다. 뭐야. 퇴근? 아깐 조금만 기다리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 처럼 이야기하더니. 그럼 내 돈은? 내 돈은 어떻게 돌려받을 수 있는거야- 크앙. 난 단호하게 외쳤다.
"젠장, Keep the change!"
웃음을 참지 못하는 동생을 뒤로 하고 앞만 보고 걸었다. 내 Keep the change 발언에 매표소 직원이 따라와서 4유로로 내 뒤통수를 가격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에. 그래 그렇게 우린 그냥 발걸음을 돌렸다. 그래 그래 여긴 성 베드로 성당이 있는 곳이잖아. 방금 전에 거슬러 받을 돈 깜박하고 받지 않고 간 걸 다시 돌려받기 위해 노력하다가 수포로 돌아가니 '잔돈은 팁으로 가지셔'라고 외쳤던 말을 다시 한 번 바꿨다.
'그래- 우린 헌금한거다.'
옆에서 동생이 엄청 웃었다. 깜박하고 잃어버린 돈을 팁으로 준거라고 자기합리화를 하더니 또 한번 제멋대로 그 용도를 바꾼다고.
천지창조, 아테네학당은 과연 명불허전이었다. 정말 많은 사람들이 그림을 보느라 한 데 운집해 있었다.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키고 있는 붉은 옷의 플라톤과 손가락으로 땅을 향하고 있는 푸른 옷의 아리스토텔레스. 소크라테스, 미켈란젤로, 디오게네스, 유클리트, 브라만테, 프톨레마이오스, 라파엘로, 조로아스터까지. 정말 다양한 학자들이 한 그림에 나타나있어 흥미롭다. 여러모로 유명한 천지창조도 좋았지만 천지창조는 아테네학당과 달리 높디높은 천장에 그려져 있어 그림을 보기가 힘들었다.
미켈란젤로는 천지창조를 그리면서 분진이 얼굴로 많이 떨어져 시력이 많이 나빠졌었다고 한다. 최후의 심판은 미켈란젤로가 천지창조를 그린 후 22년만에 그린 그림으로 본래 모든 이들이 나체였고 예수 그리스도 또한 젊은이로 등장한다. 하지만 이로인해 음란하다는 세간의 혹평을 듣게되어 미켈란젤로는 그림 구석에 혹평을 했던 의전관을 지옥에서 뱀에 감겨 고통받는 모습으로 그려넣어버렸다. 의외로 속이 좁다고 해야 하나, 아니다 섬세한 성격을 가진 미켈란젤로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점심으로는 피자와 스파게티를 먹었다. 야외 테라스에서 먹었는데 피자는 베네치아에서 먹었던 그 피자를 따라갈 곳이 없는 것 같았다. 점심을 먹으면서 새삼 베네치아가 그리워졌다.
베드로성당의 스케일에 놀랐고, 사진을 아무리 찍어도 제대로 담기지 않을 것이 뻔하기에 카메라를 끄고 베드로 성당 이곳저곳을 둘러보았다. 120년동안 미켈란젤로, 브라만테 등 최고 건축가들의 손을 거쳐 완성된 곳.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하시고" - 마태복음 16장 18~19절
베드로가 기독교 박해가 끝날 때까지 피신하기 위해 아피아 가도를 따라 가고 있을 때 로마로 들어가는 예수 그리스도의 환상을 본다. 베드로는 떨리는 목소리로 "Domine, quo vadis?"(도미네 쿠오 와디스? ;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 라고 여쭈었다(지난학기에 라틴어 강의 수강한 티 펄펄 내본다 -_-v). 그러자 예수 그리스도는 "나는 다시 십자가에 못박히러 간다"고 대답하시고 사라졌다. 베드로는 발길을 돌려 로마로 돌아갔고 이후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순교했다. 그리고 당시 이 바티칸 언덕에 묻혔던 것이다. 베드로가 순교한 지 2세기가 지난 후 기독교를 공인한 콘스탄티누스 대제는 베드로의 묘소 위에 성 베드로 성당을 착공했다. 성당 자체는 십자가 모양이며 광장과 합하면 열쇠 모양이 된다. 그리스도가 베드로에게 부여한 천국의 열쇠를 상징하는 것이다. 성당 내부는 6만명을 수용할 수 있어 인간의 상상을 넘어선 규모에 압도되는 느낌을 받는다(여의도순복음교회 본당이 1만~1만5천명 정도를 수용할 수 있는 규모).
반원형 회랑 두 개로 둘러쌓여 있어 두 손으로 전세계를 감싸안는 부드러운 느낌이다. 광장 중앙의 오벨
리스크는 깔리굴라가 고대 이집트의 헬리오폴리스에서 가져온 것이다>
트레비 분수에서 동전 두 개를 던졌다.
여기서 잠깐! 트레비 분수에는 언제나 동전들이 한가득인데 분수를 등지고 동전을 던져 한번에 들어가면 로마로 다시 돌아오며, 두 번째 동전은 원하는 사랑을 이룰 수 있다는 의미라고 한다. 공공질서를 지키지 않는 이탈리아인의 모습에 얼굴을 찌푸리고 로마로 몰려드는 온갖 소매치기들, 집시들의 모습에 온통 털리고 행여 빈털털이가 되어도 로마를 떠날 때는 트레비 분수에 동전을 던지며 로마에 다시 돌아오기를 기원한다. 그래서 오늘도 수많은 여행객들이 동전을 던지고 있다. 이 동전들은 정기적으로 시에서 수거하여 자선사업에 사용한다고 한다. 하지만 분수 바닥에 있는 동전줍는데 도가 트신 몇 몇 분들은 이 동전들을 끄집어내는 일들 자신의 본업으로 삼고 있는 듯 했다.
동생도 동전 두 개를 던졌다. 헛, 그런데 집게로 동전을 슉슉집고 순식간에 동전 집는데 사용한 집게를 조그만 크기로 접는 할아버지가 있었다. 굉장한 속도다. 듣기로는 저런 집게로 동전을 퍼올리는 분들의 하루 수입은 한화로 10만원~30만원정도라고 한다. 그야말로 짭짤하지 않은가. 우린 이 트레비 분수 근처에서 젤라또 한 그릇씩을 퍼먹었다. 바로크 시대의 걸작으로 이 또한 로마의 상징물 중 하나인 트레비 분수. 한국에서도 잠실 역에 트레비 분수 복사판을 만들어 두었다. 대양의 신 넵튠은 두 마리 말이 이끄는 조개껍질 모양 마차에 올라서 있고, 바다의 신 트리톤이 말들을 이끄는 모습이 보인다. 이 트레비 분수는 페데리코 펠리니 감독 <달콤한 인생>의 배경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스페인 광장과 나보나 광장에 들렀다. 스페인광장은 영화 로마의 휴일에서 오드리 햅번이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내려온 곳으로 유명하다. 굳이 로마의 휴일 전체 버전을 보지 않았었도 가끔 편집 영상을 통해 접하기도 하고 어느 가이드북을 넘겨봐도 언급되는 내용이다. 그만큼 영화의 후광이 컸나 보다. 18세기에는 많은 이탈리아인들이 화가의 모델로 발탁되기 위해 이곳으로 모여들었다고 한다.
나보나 광장에는 화가가 굉장히 많이 있었다. 문득 영화 '데이지'가 떠올랐다. 혹시 영화 속 장소가 여기일까? 왠지 그런 것 같다. 한국에 가서 확인해봐야지(로마 여행 당시 일지에는 이렇게 글을 썼는데 한국에 돌아와 확인해보니 '데이지' 촬영 장소는 네덜란드라고 한다). 예술가들은 자신의 그림을 팔기도 하며, 관광객의 초상화를 그려주기도 한다. 분수와 음악이 어우러져 기분좋은 햇살을 만끽할 수 있다.
곳곳에 분장을 하고 가만히 서 있는 사람들이 있었다. 관광객들은 동전을 내고는 같이 사진을 찍었다. 다들 커다랗고 무거운 동전(한 마디로 액수 높은 동전)을 내는 모양인지 동전을 집어넣을 때마다 소리가 크게 '쿨럭' 하는 소리가 났다. 우리도 당당하게 무거운 동전을 큰 소리 내며 내고 싶지만, 배고픈 여행객이 아닌가. 우린 수중에 있는 최대한 저렴한 액수의 동전을 찾아냈다. 동생이 자유의 여신상 분장을 한 이의 동전함에 한국돈 10원과 2페니를 넣으니 소리가 정말 들릴락 말락 '짤각'. 겸연쩍어하며 사진을 찍었다(나중에 들으니 동생이 동전을 넣으면서 스스로도 동전 떨어지는 소리가 너무 작아 내심 놀랐다고 한다. 난 이게 왜 이렇게 웃긴지. ㅋㅋ 더 웃긴건 작은 동전 소리에 스스로 놀란 마음에 움찔거리다 분장사와 눈을 마주쳤는데 분장사가 살짝 얼굴을 찌푸렸다나).
만큼, 혹은 운동화보다도 더 많이 조리를 신고 다녔다>
천사의 성, 판테온을 보고 Sma 슈퍼마켓에서 피자 세 종류 각각 두 조각씩(나와 동생이 각각 한조각씩 먹기 위해), 물, 콜라(이탈리아에서 만든 것인데 맛이 우리가 익숙한 콜라 맛과는 조금 달랐다), 모듬 과일을 사다 먹었다. 내가 고른 두 피자는 맛이 그럭저럭 괜찮았는데 동생이 고른 한 가지가 문제였다. 뭔지모를 재료로 만든 시뻘건 피자 -_- 처음부터 호감이 전혀 가질 않았는데 동생이 기어코 우겨 산 녀석이었다.
한 입 베어먹는 순간, 우욱- 이건 대체 재료가 뭘까. 도저히 먹을 수가 없었다. 그 순간, 동생이 지가 고른 피자를 바닥에 떨어뜨렸다. 나는 지금까지도 동생이 실수를 가장해 일부러 바닥에 피자를 떨어뜨린 것이라 믿고 있다. 하지만, 나는 바다같이 넓은 형아의 마음으로 울지말라고, 내걸 먹으라며 내가 한 입 베어먹은 (동생이 고른 시뻘겋고 비호감인) 피자 조각을 양보해줬다. 뭐, 내 호의와 상관없이 동생은 전혀 고마워하지 않는 듯 했다. -_- 하긴 자기가 고른 피자지만 정말 맛 없어 본인도 당황했을 듯. 이제까지 먹어본 피자 중 가장 최악의 피자였다. 밤 늦은 시각 정확히 그 피자 크기만큼 배가 고팠다.
우리는 저녁을 먹고 잠시 쉬다가 다시 카메라를 들고 로마 시내를 누비며 성 베드로 성당, 스페인 광장, 뜨레비 분수의 야경을 보고 숙소로 돌아와 잠을 청했다. 그날 밤 쓰레기통에서 동생이 호텔 바닥에 떨어뜨린 피자조각과 함께 내가 동생에게 준 동생이 고른 피자 조각이 들어가 있는 모습을 확인했다. 이 자식.. 언제 버린거지 -_-^
는 전광판이 있어서 많이 편리했다. 한국에서도 이런 시스템을 도입하면 좋은 반응이 있을 것 같았다>
의 작품들이 있다>
대기에 지금과 같은 천사의 상을 만들고 천상의 성이라 불리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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