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라클러의 맛있는 이야기

배낭여행

역사의 기억으로 축조된 도시, 베네치아 - 2007.7.3

  늦게 일어났다. 8시 40분에 아침을 먹고 부모님께 전화를 드렸다. 내일 로마로 이동할 계획이라 ESI를 예약했다. 두명 분 예약비 30유로를 지출했다. 산타루치아 역으로 이동해 이지유럽에 소개된 Brek에서 파스타와 샐러드를 먹었다. 정말 대만족이었다. 셀프 레스토랑이었는데, 스파게티와 샐러드, 음료를 고른뒤 한꺼번에 계산을 하는 방식이었다. 고려대 학식같은 방식이라고 보면 된다. 푸짐한 샐러드가 기분좋게 신선했고, 사과소스 맛이 좋았다. 과일 역시 매우 맛이 좋았다. 파스타 면의 질감 역시 최고수준. 다만, 이지유럽에 소개된 식당이다보니 한국말이 여기저기서 들린다는 점은 좀 별로였다. 여기까지 와서 한국어를 듣고 있자면 반가운 마음보다는 현지 기분이 나질 않아 도무지 흥이 나질 않았다.

  Brek에서 시킨 음식을 남김없이 모두 먹고 후식으로 젤라또 한 그릇씩을 들고 퍼먹었다. 피자와 파스타, 그리고 젤라또. 특히 아이스크림을 좋아하는 내게 젤라또는 이탈리아가 내게 주는 그야말로 최고의 음식이다. 가격은 (한국에서 파는 젤라또의) 절반이면서 양은 같거나 더 많다. 맛은 더 좋다. 최고다. 이탈리아를 떠나면 이 젤라또가 너무나도 그리워질 것 같은 예감이 든다. 하루에 한 그릇 이상은 꼭 퍼먹기로 결심한다. 이곳에서는 젤라또를 먹으면 먹을 수록 남는 거라는 생각이 든다. 그만큼 맛있고, 싸고, 거기에 집집마다 다르고 다양한 맛을 보여주고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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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rek. 이지유럽에 소개된 덕에 한국인 관광객들을 쉽게 볼 수 있다>

  골목 골목에 있는 젤라또 가게가 파스타, 스파게티, 피자가게보다 더 많은 것 같다. 가이드북에서는 젤라또에 대해 고작 한 줄 정도 소개에 그치고 있지만 나는 와인, 스파게티, 파스타, 피자보다도 젤라또가 더 인상이 깊었다.

  베네치아는 개펄 위에 세워진, 거의 무(無)에서 창조된 새로운 세계라 할 수 있다. 11세기 이후부터 15세기말까지 황금시대를 이룩해 '이탈리아의 진주', '공화국의 귀부인'이라 불렸던 도시. 한때 베네치아의 부는 영국 전체를 뛰어넘었다고 한다. 러스킨은 산 마르코 성당에 대해 "균형잡히고, 풍요롭고 환상적인 색채의 작품으로서 이제까지의 인간적인 상상력을 가득 채운 가장 아름다운 꿈"이라고 극찬했고, 두깔레 궁에 대해 "베네치아 고딕 양식의 전체계를 완성하고 구현한 건물"이라고 찬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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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 마르코 성당과 그 뒤로 보이는 두깔레 궁. 이 앞의 광장은 바로 산 마르코 광장. 산 마르코 광장은
  원래 산 마르코 성당의 과수원이었다. 역사적 사실을 하나라도 더 알고 들여다 본다면 베네치아 시가지
  전체가 하나의 살아있는 이야기로 다가온다. 모르면 그냥 "좋네~ 사람 많네~"하면서 지나치게 될 뿐.
  나폴레옹은 이 광장을 유럽에서 가장 훌륭한 응접실이라고 공언하기도 했다>

  16세기부터 베네치아는 온갖 요구를 해오던 제국주의 국가 스페인, 프랑스, 터키 같은 국가들과 경쟁을 해야 했다. 베네치아는 기술적인 면에서 터키보다 우위를 점하고 있었지만 1572년에 키프로스 섬을, 1669년에는 이라클리온 지역을, 1718년에는 모레아 반도를 차례로 잃었다. 베네치아 함대는 16세기 지중해의 패권을 장악했지만, 베네치아가 알아차리지 못하는 사이에 서서히 세계 항로의 중심은 지중해에서 대서양으로 옮겨갔다.

  셰익스피어가 살던 시기에 베네치아는 상업도시로서 경제와 문명이 융성한 곳이었다. 그래서 「베니스의 상인」을 만들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셰익스피어가 설정한 속세의 무대에서 고리대금업자 샤일록의 장삿속과 유대교도들의 저항, 제시커, 그리고 그 일행들이 오고 간다. 한 가지 재미있는 점은, 셰익스피어는 베니스의 상인을 쓸 때 베네치아에 와본 적이 없었다고 한다. 한 때 파리를 능가하는 문화도시로서의 면모를 구축해(이 자그마한 도시에 600개가 넘는 극장이 있었다고 한다) 유럽 각국의 내로라 하는 엘리트들은 베네치아에 와보지 않고는 진짜 젠틀맨 행세를 할 수 없었던 시기도 있었다. 이곳에서 카사노바가 로맨스를 일으킨 이래 수많은 여행자, 작가, 예술가들이 매혹된 곳. 베네치아의 아름다움을 제대로 느낄 수 있는 방법은 몇 시간이고 기차역과 리알토 다리 사이의 골목 골목을 걸어다니는 것이다.

  내일은 에우로스타를 타고 로마로 이동한다.

재미있는 것은, 마치 누구나 만져볼 수 있고
맛볼 수 있지만, 이내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
끊임없이 흐르는 물처럼, 수많은 소설가나 사학자들이
과거의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다양한 시대의
베네치아를 통해 어떤 영감을 받았다는 사실이다.
- 페르낭 브로델

나의 곤돌라는 작은 운하들을 따라가고 있었다.
동방의 어느 도시의 미로 속으로 나를 안내하는 정령의
신비스러운 손길처럼, 내가 나아감에 따라서 제멋대로
그어지는 가느다란 주름과 함께 무어풍의 작은 창문이 나 있는
높은 집들을 간신히 헤치고 지나갔다.
마법의 안내자가 손에 촛불을 들고 길을 밝혀주고 있는 것처럼,
헤쳐나가고 있는 물길 앞쪽에는 햇살이 빛나고 있었다.
- 마르셀 프루스트

베네치아는 인간의 재치와 창의력을 보여주는 최고의 본보기이다.
인간에게 절망한 사람은 베네치아로 가라. 더 이상 절망하지 않게 될 것이다.
- 앤서니 버제스

베네치아에 머물렀던 시간은 얼마 되지 않지만, 나는 이곳의 유적들을 충분히 내것으로 소화했다.
그리고 완전하지는 않지만 아주 명료하면서도 참된 인상을 간직한 채 이곳을 떠난다.
- 괴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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