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9시 20분, 미리 예약해 둔 베네치아 행 열차를 타고 하루종일 이동했다. 12시가 가까워 오자 배에서 꼬르륵거리며 아우성 쳐 크로아상 한 입, 사과 한 입을 베어물고 동생에게 행복한 표정을 마음껏 지어보였다. 동생이 그제서야 왜 내가 그렇게 빵과 사과를 한 개씩 챙기라고 했는지 알 것 같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내게 매달린다. "형님아~" 하는 애절한 목소리에 빵 반 조각, 사과 절반 가량을 떼줬다. 아- 그 이후로 나는 베네치아에 도착할 때까지 정확히 사과 반개, 빵 반 개만큼 배가 고팠다. 동생을 계속 구박했다. 사과 반 개, 빵 반 개만큼 배가 고픈데 이거 누구 때문이냐면서. 그런데 동생 대답이 가관이다.
"나도 사과 반, 빵 반 개만큼 배가 고파. 히히"
아 놔~
열차이동 중 론리플래닛 맨 뒷켠에 있는 이탈리아어 기본적인 회화와 숫자 세는 법 등을 외웠다. 거친 독일어 발음이 줄줄 이어진 구내 방송이 어느 시점부터 늘어뜨려 발음하는 듯한 이탈리아어 방송으로 바뀌고, 여권을 확인하는 경찰들이 오고 가는 것으로 국경을 넘어섰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EC(고속 열차의 한 종류)는 구간에 따라 유레일 패스를 가지고 있더라도 추가 요금을 내야 하는데 왠 할아버지가 와서는 자꾸 기계를 만지작거리더니 조그만 영수증 하나 죽 찢어주며 18유로를 받아가서 돈을 엉뚱한데 날려버린 기분이 들어 내심 찜찜했다. 어찌된 일이고 하니, 그 할아버지는 계속해서 조그만 영수증 비슷한 종이 쪼가리를 내밀며 돈을 요구했고, 나는 가뜩이나 여행객 등쳐먹는 놈들 많다는 이탈리아에 대한 이야기를 주워 들은 건 많은 터라 의심가득한 표정으로 계속 영어로 말했던 것이다. 이에 질세라 할아버지는 계속 이탈리아 말로 똑같은 말만 앵무새처럼 반복할 뿐이었고, 당연히 나는 무슨 말인지 전혀 알아듣지 못했다. 이거 하나는 알 수 있었다. 지금 저 할아버지는 나한테 돈 내놓으라는 거...
할아버지가 보는 앞에서 론리플래닛과 이지유럽을 다 뒤져보면서 론리플래닛 후미진 곳에 EC를 이용할 때는 구간에 따라 추가요금이 부과된다는 설명을 발견하고 돈을 꺼내 쥐어 보냈다. 아- 정당한 요금을 지불했다고는 하지만 영 찜찜한게, 우리돈 2만원이 넘는 돈을 가로 2센티 세로 4센티 정도밖에 안되는 황당한 종이쪼가리 하나를 받는 대가로 줘보냈다는 것이 자꾸만 찝찝했다. 이 찝찝함은 우리가 탄 컴파트먼트 구간 복도를 지나가는 젊은 승무원 한 명을 붙잡고 유레일 패스를 소지하고 있는데도 이 추가 요금을 지불해야 하는 것이냐고 재차 묻고 확인받는 것으로 말끔히 해소할 수 있었다.
<트래블 알라까르뜨>를 읽다보면 태국을 방문한 한국인 부자(父子)가 가이드에게 투어 비용을 바가지 쓰는 이야기가 나온다. 아버지가 도통 공부에는 관심이 없는 아들을 데리고 견문이라도 넓혀줄 심산으로 여행을 왔는데 외국어를 구사할 줄 모르는 한국인을 마음껏 등 쳐 먹는 고약한 현지인 가이드를 만난 것이었다. 부끄러워 대충 넘어갔을 법도 하지만, 그때 아버지는 둘만 따로 떨어져 오토바이를 타고 가는 길에 중학생인 아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영어 한마디 못해 돈 달라는 대로 다 주며 바가지 쓰고, 비용 대비 부당한 대우를 받아도 항의 한마디 못하고 고스란히 당하는 아버지를 봐라. 이게 다 영어를 못해서 그런 것이다."
무조건 공부해야 한다는 말보다도 한 순간 보고 듣고 느낄 수 있는 체험이 훨씬 강한 자극으로 다가오는 법이다. 영어도 겨우 제 앞가림 할 정도이면서, 영어 외에 하나 정도는 외국어를 더 공부해두어야 겠다는 생각을 하게되는 체험이었다. 검표원 할아버지와 벌인 실랑이는 어림잡아 15분은 더 되었을 법하다. 정~말 답답했다. 언어가 달라 말이 전혀 통하지 않는 그 상황.
영수증을 주머니에 구겨넣고, 차창을 뚫어져라 보고만 있었다. 포도밭이 계속 펼쳐지는 것을 보니 대학에서 이탈리아 와인에 대해 배울 수 있었던 와인 개론 수업이 생각났다. 그런 식으로 혼자 한창 포도밭에 시선을 둔 채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 젠장, 못. 볼. 걸. 봤다.
...포도밭에서 기차를 향해 바지를 내린 채 손으로 자신의 물건을 연신 흔들며 자위행위 하는 남자. 사실, 한국에서 여고나 여대 근처에 도사리고 있는 바바리족 이야기는 뉴스로도, 그리고 친구들을 통해서 많이 들어왔지만, 내가 실제로 본 적은 없었기 때문에 여자애들이 그런 변태 이야기를 하면 그때마다 나는 심드렁한 표정으로 "그럴 땐 그냥 그 남자를 손가락질 하면서 막 비웃어줘. '언제까지 그렇게 살텐가 -┎' 이런 말을 던져보는 것도 좋을 것 같은데." 이런 말이나 했을 정도로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막상, 이 머나먼 타지에서 못볼 걸 보니, 순간 밥 맛이 뚝 떨어진다. 한국에 다시 돌아온 지 3주정도 된 지금이야 그 느낌은 많이 희석되었지만, 일지를 읽어보니 그 당시엔 정말 토할 것 같았다고 적어두고 있다.
한 명의 추잡한 행위가 그 나라 전체 이미지를 망칠 수도 있다는 말이 뭔지 확- 실감이 났다. 나는 평소에 이탈리아에 대해 호의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었다. <이탈리안 조이>에서 본 맛깔스러운 이탈리아 이야기가 계속해서 가슴 어디선가 감돌고, 2006년 2학기 교양 수업에서는 이탈리아를 배경으로 한 소설을 써 내 좋은 평을 듣기도 했다. 와인 개론 시간에는 이탈리아 와인이 그 풍미를 더해주었다. 그런데 방금 전에 본 변태 한 명때문에 그렇게 직접 눈으로 보고 땅을 밟아보길 원했던 이탈리아가 싫어지더라. 여자들이 한 번 성적 수치심을 느낄만한 행위를 당하면 세상 모든 남자들이 혐오스럽게 보인다는 게 무슨 말인지 알 것 같았다. 그 이후로 이탈리아 남자들은 죄다 변태로 보이는 거다.
베네치아에 도착해 처음 느낀 것은 이 곳 여자들은 다들 시원시원하게(?) 입고 다닌다는 것이다. 팬티같은 바지, 수영복 같은 상의, 속옷만 걸친 것 같은 천조각 복장을 하고 다니는 여자들이 많아 놀랐다. 가슴이 훤히 들여다 보이게 옷을 입은 여자들도 많다. 어느 한국 배낭여행객이나 다 그랬겠지만, 처음에는 헉- 여기 여자들 대체 왜이래- 하면서 놀란 병아리 상태로 걷지만 나중엔 그런 옷차림도 워낙 익숙해져서 아무 느낌도 없어진다. 베네치아에 숙소를 잡고 카메라만 들고 나갔다. 리셉션 아저씨의 멋지게 빗어 넘긴 윤기있는 검은 머리칼이 돋보인다. 정말, 이탈리아인들은 타고난 패션 감각이 있는 걸까-? 라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첫 인상이었다. 그림과 사진으로 접하던 곤돌라를 처음 본 순간, 더 이상 말 할 필요가 없었다. 낭만적인 도시다. 유럽 오길 잘했다. 이런 생각들로 가득차 신이 날 뿐이었다.
론리플래닛에 소개된 식당은 날 실망시키는 법이 없다. 부러 찾아가 먹은 마르게리따 피자의 맛은 정말 일품이었다. 2천원 정도면 피자 한 조각을 먹을 수 있는데, 그 한 조각이라는 것이 얼굴보다 더 크다. 우리는 패밀리사이즈로 한 판을 시켜 세 조각씩 먹어치웠다. 두꺼운 도우에 이것저것 토핑을 얹은 미국식 피자보다 전통적인 방식으로 구워 낸 이탈리아 피자에 내가 가진 한 표를 던진다. 한국에서는 벨로벨라나 일프리모 등지에서 이탈리아식 피자 맛을 볼 수 있었지만 현지에서 맛보는 진짜 이탈리아 피자는 그 격이 달랐다. 막 구워 내 따뜻하디 따뜻한 피자를 베어무는 순간, 그동안 도우 위에 얹혀서 오븐에 달궈지느라 후끈해진 토마토가 듬뿍 배어 나오고, 치즈가 촤악- 감도는 맛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피자 하나만으로도 이탈리아는 충분히 가볼만하다고 여겨질 정도로 맛이 좋았다.
한국에 온 지금도 가끔씩 생각나는 피자. 마르게리따 피자가 정말 맛있다. 이 근처에는 한국인을 찾아보
기가 힘들다. 한국인 여행족은 유럽여행 시 주로 '이지유럽'을 참고하는데 이지유럽은 여행지 구석구석
까지 돌며 모래 속의 진주를 찾아내듯 현지인 위주의 식당보다는 체인점 형태의 식당을 많이 싣는 경향
이 있다>
풍부한 질감의 젤라또까지 정말 만족스러운 양과 저렴한 가격. 흔히 우리가 먹는 아이스크림에 비해 공기함량이 많아 입에서 느껴지는 질감과 풍미가 깊다. 공장에서 다량 생산하지 않고, 직접 요리사가 신선한 재료와 우유를 사용해 만들기 때문에(한마디로 홈메이드) 이탈리아 전역에 퍼져 있는 젤라또 가게마다 다양한 맛과 스타일을 선보이고 있어 더욱 매력적이다. 한국에서 이탈리아 정통 아이스크림인 젤라또 맛을 보기 위해서는 티아모, 구스띠모나 요나인에 가면 맛 볼 수 있다. 아이스크림을 엄청나게 좋아하는 나로서는 이탈리아는 천국이나 다름 없었다. 한국에서 사먹는 것보다 훨씬 저렴한 가격에, 훨씬 많은 양, 그리고 훨씬 풍부한 맛을 느낄 수 있었다. 젤라또는 스위스에서 맥도날드 빅맥세트를 꾸역꾸역 먹던 기억을 떠올려보면 행복하지 않을 수 없는 순간을 선사해줬다.
치아의 골목길에는 사람이 겨우 지나갈 수 있을 정도로 좁은 곳이 많아 현지인들은 우산을 쓰지 않는다.
비좁고 복잡한 골목길은 카사노바가 오랫동안 들키지 않고 바람을 피울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고 한다>
다리를 세우는 데 만 개 이상의 말뚝을 박았다고 한다. 1592년에 완공되었다. 육지에서 사람들이 피신했
을 때 입에 십자가를 문 비둘기 한 마리가 이 부근까지 인도했다는 전설이 있다>
다른 날의 상념을 권유할 때,
비로소 그녀는 자기 존재에 눈뜨고,
유피테르를 맞이하는 님프가 된다.
그녀의 귀에는 귀고리가 아름다운 울림을 내고,
산 조르노 마조레 성당을 그녀는 받을어올려
울적하게 이 아름다운 물의 품에 넋을 잃고 미소짓는다.
-「베네치아의 아침」, 릴케
비로소 그녀는 자기 존재에 눈뜨고,
유피테르를 맞이하는 님프가 된다.
그녀의 귀에는 귀고리가 아름다운 울림을 내고,
산 조르노 마조레 성당을 그녀는 받을어올려
울적하게 이 아름다운 물의 품에 넋을 잃고 미소짓는다.
-「베네치아의 아침」, 릴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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