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라켄을 가기 위해 루체른 중앙역으로 가 골든패스라인 열차를 탔다. 골든패스라인은 루체른과 몽뜨뢰를 잇는 열차 루트로 스위스에서 가장 멋진 경관이 잇따라 펼쳐져 누구나 그 매력에 흠뻑 빠져들곤 하는 루트이다. 유레일 패스를 소지하고 있다면 별도 추가 요금 없이 탑승 가능하며 피어발트슈퇴터 호수와 레만 호수를 따라 달리는 차창 밖으로는 말로 다 할 수 없는 풍광이 펼쳐진다. 이런 풍경을 두고 잠을 퍼대 잔다면 그대는 분명 감성이 메마른 사람이리라. 그런데!!!!, 이런 풍광을 두고도 대각선으로 건너편에는 한국인 관광객으로 보이는 여자 셋(한국인 임에 틀림없다. 그들이 들고 있는 책자에 선명한 글씨로 '이지유럽'이라는 글씨가 보였으니까)이 드렁드렁 푸푸 소리를 내가며 잠만 자다 인터라켄에서 급히 내렸다.
두고 드르렁거리며 잠을 잘 수 있는지 내심 신기했다>
바깥 경치를 보느라면 어느새 도착한다. 한 시간이 짧게 느껴진다. 이런 자연환경을 가지고 사는 스위스인들은 엄청난 보물을 쥐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사진을 찍어도 실제 눈으로 보고 가슴으로 느끼는 그 느낌이 제대로 구현되지 않아 이내 카메라는 완전히 내려놓고 경치에 빠져들었다. 이런 풍광은 고작 기계적인 요소- 픽셀과 입자의 조합으로는 제대로 전달 할 수 없다. 직접 가서 가슴 속에 담고 와야 한다.
에메랄드 빛 호수와 배가 보인다. 나까지도 그런 풍경을 보고 있자니 풍경 속에 푹 빠져드는 느낌이었다. 여기까지는 좋았다. 배 위에 다정한 연인들이 있다. ㅜ.ㅜ 남자는 낚시를, 여자는 엎드려 따뜻한 햇살을 온몸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다음에 다시 올 때는 꼭 사랑하는 이와 다시 오겠다고 또 또 결심한다.
스위스에 왔으니 퐁듀 한 번 먹어봐야 하지 않겠는가. 우리는 퐁듀 시누아즈를 시켰다. 한 번이지만 제대로 먹자는 뜻에서 인터라켄에서 퐁듀 요리로 가장 유명한 샬렛 호텔 오버란트에서 운영하는 레스토랑으로 호기있기 입장했다(이 순간을 위해 스위스에서의 매 끼니는 맛 없는 빵조각에 차디찬 슬라이스 햄 쪼가리를 끼워먹거나 맥도날드에서 끼니를 때웠다). 가격은 2인분에 80프랑. 상당한 가격이었다. 스위스의 제대로 된 레스토랑에서 처음 먹는 정식이었다. 가이드북에서는 관광객들이 많이 붐비는 여름에는 퐁듀 맛을 보기가 힘드니 미리 호텔이나 여행 안내소에서 예약을 하도록 권하고 있었지만 우리는 예약 하지 않은 상태에서 바로 맛볼 수 있었다. 주문을 하고 음식이 나오길 기다리면서 가이드북을 다시 읽어보니 이런 구절이 있었다.
"예약하지 않은 상태에서 바로 퐁듀의 맛을 볼 수 있었다면 '운수 좋은 날'이라고 생각하자."
하하. 우린 매우 기분좋게 가이드북을 닫을 수 있었다. 퐁듀 시누아즈는 묽은 육수에 야채를 넣어 끓이며 직원이 가져다 준 긴 꼬챙이에 얇은 고기를 끼워 끓는 그릇에 넣어 익혀 먹는 것으로 다양한 종류의 소스와 함께 즐길 수 있다. 그 외에 다양한 과일도 준비 되어 있어 곁들여 먹을 수 있었다.
우리 뒷 테이블에 앉은 일본인 가족은 스위스 전통 방식의 퐁듀를 시켰는데(점원은 퐁듀 쉬누아즈를 권하는 듯 했으나 일본인 가장이 "여기까지 왔는데 스위스 고유의 전통적인 스타일의 퐁듀를 먹겠소"라고 이야기했다) 우리 테이블까지 풍기는 치즈 '꼬랑내'가 너무 심했다. 으흐, 꼬랑내라니 언어 선택이 지나치게 천박한거 아니냐고 반문할지 모르겠으나 '꼬랑내'라는 단어만이 실제 그 냄새가 코끝으로 스며들 때의 당혹감을 조금이나마 전달할 수 있다. 꼬랑내가 심해도 너무 심하다. 레스토랑 전체가 한 테이블에서 주문한 치즈 퐁듀 냄새로 순식간에 가득 차는 듯 했다. 내 생각엔 아마 점원의 추천을 무시하고 당차게 주문한 일본인 가장이 누가뭐래도 가장 당혹스러워하지 않았을까 싶다. 나는 처음에 우는 아이 기저귀를 가는데 아이가 기저귀에 싼 변에서 나는 냄새가 우리 테이블까지 풍겨오는 것으로 생각했을 정도로 치즈 꼬랑내가 심했다. 이정도면 냄새가 어느정도였을지 상상이 가는가. 응아 냄새로 착각했을 정도인.. 퐁듀 냄새. . . 스위스 갔다고 전통적인 스타일의 퐁듀를 시키면 . . 그 다음은 책임 못진다.
퐁듀를 먹고 부른 배를 문지르면서 인터라켄 시내를 걷고 있는데, 동생이 흥미로운 이야기를 해줬다. 백인 여자들은 팔뚝에 있는 털을 주기적으로 밀어주는데, 그렇지 않으면 햇볕 아래에서 황금빛으로 빛나는 모습을 볼 수 있다는 것이었다. 고등학교 시절 영어선생님으로부터 들은 이야기라는데, 동생한테 들은 바에 의하면 이런 대화를 주고 받으면서 알게 된 것 같다.
이곳은 미국 Arizona 주의 홈스테이 가정.
캐서린 : 한국 여자들은 몇 일마다 한 번씩 팔뚝에 있는 털을 밀어?
동생 영어선생님 : 팔뚝에 있는 털? 우린 평생 안 미는데..
캐서린 : 에이~ 농담하지마. 어떻게 평생 팔뚝 털을 밀지 않으면서 살 수가 있어~
동생 영어선생님 : 아냐 정말이야. 난 이제까지 살면서 단 한 번도 그 부위를 면도한 적이 없는걸?
캐서린 : 헉, 진짜야?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팔뚝을 막 만져보며) 농담이지? 농담일거야.
캐서린 : 한국 여자들은 몇 일마다 한 번씩 팔뚝에 있는 털을 밀어?
동생 영어선생님 : 팔뚝에 있는 털? 우린 평생 안 미는데..
캐서린 : 에이~ 농담하지마. 어떻게 평생 팔뚝 털을 밀지 않으면서 살 수가 있어~
동생 영어선생님 : 아냐 정말이야. 난 이제까지 살면서 단 한 번도 그 부위를 면도한 적이 없는걸?
캐서린 : 헉, 진짜야?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팔뚝을 막 만져보며) 농담이지? 농담일거야.
한국에서 들었다면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못했을 법한 얘긴데, 바로 앞에 걸어가는 여자의 팔뚝 뒷모습을 보니 대관절 무슨 말인지 알 것 같다. 햇빛을 받을 때마다 마치 달빛을 받은 늑대의 어깨처럼 빛나는 그 모습. - _- ; 매일매일 그 부위를 면도하자면, 모르긴 몰라도 상당히 불편할 것 같다.
인터라켄을 돌아보고 루체른으로 돌아왔을 때 저녁으로 맥도날드를 먹었다. 유럽에서 먹는 두 번째 맥도날드. 사실, 유럽까지 가서 맥도날드를 먹는 배낭여행 족들을 이해하지 못했는데, 이제는 알 것 같다. 그들이라고 먹을 줄 몰라서 현지 음식 못먹었겠는가. 하지만 10프랑짜리 한끼와 4~50프랑짜리 한끼 식사를 놓고 고심하다보면 맥도날드로 손이 갈 수밖에 없다. 아침, 점심 대충 때우고, 저녁은 제대로 먹자- 이렇게 되는 것이다. 이쯤 되니 스위스는 물가가 너무 비싸, 빨리 이탈리아로 넘어가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다.
축제일이라 그런지 루체른은 온통 시끌시끌했다. 거리에는 맥주를 잔으로, 혹은 병째 들고 다니는 이들로 가득하고, 바닥에는 온통 깨진 병조각이 가득해 쪼리를 신고 있는 나는 조심스럽게 걸음을 옮겨야만 했다. 축제 분위기에 같이 동참해 휩쓸려 다닐까 하는 생각을 잠시 해 씻고 가방 정리하고 카메라만 들고 편한 복장으로 루체른 시가지로 다시 나왔지만 왠지 갑자기 함께할 마음이 들지 않아 도로 들어와 잠을 청했다.
일지를 훑어보니 그 당시 침대로 다시 돌아와 적은 글은 이것이었다.
"내일은 베네치아로 이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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