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라클러의 맛있는 이야기

배낭여행

알프스에 묻고 온 내 모자, 루체른 - 2007.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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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쩨른의 상징, 카펠교.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다리로 다리 지붕 안 쪽에는 하인리히 뵈크만의 그림
  들로 장식되어 있다. 다리 외관은 꽃들로 장식되어 있으며, 스위스를 여행하는 사람들이 왜 루쩨른을 가
  장 아름다운 도시로 손꼽는지 알 수 있게 해준다>

  엽서와 달력에서나 봐 온 그림 같은 풍광. "우리는 결코 가능성을 놓치지 않는다"는 스위스 건축회사의 자신감 넘치는 말. 평평한 땅에는 누구나 도로를 만들고 기찻길을 놓을 수 있지만, 수려한 자연경관을 고스란히 보존하면서 교통시설을 놓을 수 있는 기술은 분명 아무나 가질 수 있는 게 아니다. 그 분야에 대해서는 세계최고의 기술을 가진 나라. 1945년의 불경기 이후 스위스인들의 급여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솟았다고 한다. 민간 기업에서는 매년 연말이면 급료의 100~200%에 달하는 보너스를 직원들에게 지급한다.

  내 기억 속의 스위스는 이원복 교수의 <먼나라 이웃나라> 스위스 편에서 맹수들의 습격에 방어하기 위한 들소떼들이 머리를 바깥쪽으로 내민 채 둥그렇게 선 모양처럼 창과 방패로 무장한 모양의 그림이었다. 중립국. 세계대전의 포화 속에서 그들의 표방한 그들의 위치. 어릴 때는 그 중립이라는 말이 그렇게 좋아보일 수가 없었다. 중립국이라니. 물론, 그 허울 뿐인 중립국 스위스의 속내는 그들이 내세우는 깨끗함, 근면, 성실과 다시 한 번 다르다는 사실을 깨닫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지만, 세계대전의 발톱과 칼날을 비켜가 거의 피해를 입지 않았다는 사실은 우리의 비참한 과거와 묘한 매치를 이루어 내심 부러웠다.

  단순히 중립이라는 의지 표명이 국가의 온전한 독립을 보장해 주지는 않는다. 우리 역시 러일전쟁 당시 중립국을 표명했지만 무시당하지 않았나. 스위스의 중립은 그 당시 앙리 장군의 전략과 전 국민의 일사분란한 단결로 성공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단순히 의지 표명에 그친 것이 아니라 실제 상당한 전투력을 갖추고 불합리한 침입에 강경히 대응할 수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독일과 프랑스, 이탈리아라는 강대국 틈바구니에서 스위스 연방 정부는 총동원령을 내려 전투력을 동원했고, 이런 위세에 눌린 독일은 스위스 침공을 단념한다. 독일, 영국, 이탈리아 전투기들은 적국을 폭격하기 위해 스위스 상공을 지나다녔는데(그래야 최단시간 내에 적국을 폭격할 수 있었다) 자국 영공을 마음대로 넘나들지 말라는 스위스의 지속적인 경고에도 아랑곳않자 스위스는 자국 전투기와 고사포 연대를 동원하여 수백 대의 전투기를 격추시켜버렸다.

  분명한 의사 표명에 걸맞는 실세를 갖추고 있었기에 중립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내세우는 '중립' 이면에는 퀴퀴한 역사의 단면도 함께 하고 있다. 자랑처럼 이야기하는 스위스 은행은 나치의 자금 지원줄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졌고, 나치 정권을 피해 탈출한 수만명의 유태인 난민들은 스위스 국경에서 입국을 거부당하여 나치 치하에서 죽음을 맞아야 했다. 몰래 입국에 성공했다 하더라도 발각되는 즉시 독일 측으로 강제 송환되었음은 물론이다. 1990년대에는 스위스 은행이 유태인 학살에 희생된 유태인들의 막대한 예금을 말없이 계속 보유하고 있다는 사유로 고소당했다.

  그외에 스위스에 대한 강렬한 인상은 노스트라다무스의 시 한 자락. 모든 쥬네브로부터 도망치라는 것.

달아나라, 달아나라. 모든 쥬네브에서 달아나라.
황금의 사튀르는 쇠로 변하리라.
거대한 빛에 반대되는 것이 모든 것을 멸절한다.
그 전에 창공은 전조를 보여주리라.  - 제세기 제 9권 44편.


  이것이 현재의 Geneve를 가리키는 것인지는 알 길이 없다. 하지만 인상적이었다. 그의 시들은 온통 수수께끼 투성이인데다 오랜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이 시는 예전에 일어났던 이 사건을 암시하는 시 같아." 정도로 결론을 맺는 경우가 거진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가톨릭 신자인 그가 자신이 본 환상들을 수수께끼같은 단어들의 구성으로 기록한 그의 저서 '제세기'는 요한계시록과도 은연 중 비슷한 부분이 많아 성경적인 관점에서 접근한 몇 몇 책을 읽어 본 적이 있었다. 계속 읽고 있자면 뭔가 신비주의적인 관점에 빠지는 것도 같고 이상한 기분에 사로잡히곤 해 그도 얼마 못가 관두긴 했지만. 알 수 없는 시들만 가득할 뿐이니 호기심이 간다 해도 굳이 그의 시를 찾아볼 필요는 없다. 요즘은 세간의 이목을 끌어보고 싶은 점쟁이들이나 그의 시들을 자의적으로 해석해 인류 멸망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외쳐대는 모양이다.

  아침 일찍 샤워를 하고 감옥 창문(ㅋㅋ)을 여니 날씨가 맑았다. 그동안 방문한 영국, 벨기에, 독일에서 단 한 번도 보지 못한 푸른 하늘이 손짓한다. 유럽에 온 이후 가장 맑은 날씨였다. 날씨가 좋지 않으면 내일 알프스에 오르려 했는데 오늘 오르기로 했다. 가이드북을 보니 아침에 날씨가 좋아도 오후엔 금방 흐려진대서 급히 동생을 깨워 씻으라 했다. 아침으로 크로아상, 베이글, 오렌지주스를 먹고 열차에 올랐다. 가이드북에서는 유람선을 타고(유레일패스가 있으면 유람선을 추가비용 없이 탈 수 있다) 슈탄스슈타트 선착장까지 이동한 후 열차를 타고 엥겔베르그로 갈 것을 추천하고 있지만 내 생각은 반대다. 굳이 유람선을 타고 싶으면 알프스에서 내려올 때 타는 것이 더 좋다. 이유는 뒤에서 또 이야기하겠다.

  어찌되었든 우리는 열차를 타고 엥겔베르그까지 이동했는데 바깥 경치가 정말 장관이다. 스위스는 그동안 방문했던 나라처럼 이렇다 할 정해진 볼거리나 유적지가 있는 것이 아니라 자연과 자연을 극복해 가며 사는 모습 그 자체가 볼거리다. 열차 차창으로 보이는 풍광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어딜봐도 엽서같은, 혹은 동화책에 어울릴 만한 경치가 줄지어 펼쳐졌다. 그래- 동물은 이렇게 키워야하는거야 싶을 정도로 풀어놓고 키우는 모습하며 집집마다 창가에 꽃을 가꾸어둔 모습이 부러웠다. 닭장같은 우리에서 인공사료 먹으며 키워지는 한국 소들, 빼곡하게 밀집되어 있는 우리네 집들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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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객석 안에서. 현지인들은 이런 그림같은 경치에 무덤덤한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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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맞아! 소는 이렇게 키워야 한다- 는 점을 느꼈던 풍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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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 사람은 낙하산을 타며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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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창밖으로 고개 내밀지 말라는 경고문구가 있었지만 현지인은 물론 관광객들도 다들 고개를 내밀며
  바람을 느낀다. 그런 모습에 안심한 나도 마음껏 고개 내밀고 한 컷>

  알프스를 오르는 데에는 티틀리스, 리기, 필라투스 세 가지 방법이 있다. '티틀리스'는 3228미터 정도를 올라가며 아이스 플라이어를 위시한 각종 체험거리가 가득하다는 매력이 있다. '리기'는 피어발트슈퇴터 호수를 사이에 두고 루쩨른과 마주보고 있으며 '산들의 여왕'이라고 불릴 만큼 경관이 좋다. 일찍이 빅토르 위고, 멘델스 존이 이곳에 올라 스위스의 아름다움을 이야기했었다. 등산철도가 1871년 최초로 설치된 곳이기도 하다. 필라투스는 깎아지르는 절벽이 주는 섬뜩함으로 유명하며 흔히 악마의 산으로 불리운다. 믿거나 말거나 가끔 빌라도 총독의 악령이 나타나며 그 악령을 본 사람은 그 해를 넘기지 못한다고 한다.

  우리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내가 한국에서 가져온 50% 할인쿠폰이 티틀리스 쿠폰이었기 때문에 우리는 티틀리스로 향했다. 티틀리스에 올라 만년설을 보고 여기저기 사진을 찍었다. 유럽도 한국도 푹푹 찌는 한여름인데, 이런 한여름에 새하얀 눈을 밟고 서는 경험은 정말 짜릿한 경험이었다. 내가 가져온 쿠폰 중 모자를 증정받을 수 있는 쿠폰이 있어 티틀리스 청색 모자도 하나씩 받아들고 나왔다. 아이스플라이어를 타고 가면 각종 체험기구를 탈 수 있는 곳이 나타난다. 이 높은 곳에 대체 어떻게 그런 시설을 만들어 놓은 건지 놀라울 따름이다.

  쿠폰으로 받은 자랑스러운 내 청모자-를 쓰고 멋들어지게 튜브에 앉아 끌어주는 직원에게 브이자를 그리며 신나게 내려갔다. 바람소리가 슝슝- 귓가에 들린다. 헉- 뭔가 속도가 빨라지는 건 좋았는데 그와 함께 갑자기 모자가 휭- 날아가버렸다. 아악- "Oh~ my cap~ my cap~~ ㅜㅜ" 내 처절한 절규에도 아랑곳않고 튜브는 내 모자를 뒤로하고 그새 한바퀴 슝 돌아 멈춰섰다. 내 뒤로 온 동생이 저쪽에 뭔가 청색 모자가 있다는 말을 해줬다. 신발 신고 걸어가면 안되는 코스(계속해서 사람들이 튜브를 타고 내려오니까 위험하다)를 거꾸로 달려올라가 청색 모자를 집어왔다. 내 모자 찾았다는 생각에 마구 웃으면서 뛰어왔다. 그땐 "우하하하~ 이런게 바로 다 추억아니겠어~? ^-^" 이런 심정이었다. 그리곤, 자랑스럽게 내 모자를 내려다보는 나의 눈길......

  - 헉! 대체 이 찢어지고 구멍난 냄새나는 모자는 뭐지 ㅜㅜ 난 그 녀석을 바로 버렸다. 나 말고 또 다른 외국인이 모자쓰고 튜브를 타다 나처럼 떨군 것이 분명했다. 나는 리프트를 타고 올라가면서 연신 "Where's gone my cap T^T" 했고 튜브를 다시 타고 내려오면서 내 모자의 최후를 확인했다. 하도 여러명이 튜브를 탄 채 뭉개고 지나가 직각으로 완전히 단단하게 눈 속에 박혀 있는 내 티틀리스 모자를 말이다. 난 나의 새 모자를 30분도 채 써보지 못한채 그렇게 알프스 꼭대기에 심고 돌아왔다. 훗훗- 지금도 수많은 관광객들이 내 모자가 심겨진 알프스 언덕에서 튜브를 타고 있으리라. 나중에 다시 방문하게 되면 그때에 내 모자를 고구마 캐듯 캐와야겠다. - _-;

  어느 순간 주위를 둘러보니 아까만해도 무척 맑아 우리가 열차를 탔던 부근 마을이 모두 쩜쩜으로 보일 정도로 밑이 훤히 내려다 보였었는데 지척이 구름, 안개로 뒤덮여 한치 앞이 보이질 않았다. 아까만 해도 정말 맑았었는데, 케이블카를 타는 탑승장까지 가는 길조차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오는 사람들 역시 케이블카를 타면서 아무 것도 보지 못해 아쉬울 것 같았다. 우리들 역시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올 때는 모든 풍광을 다 세세히 구경하며 올라왔지만, 내려가는 길에는 짙은 구름으로 아무 것도 보지 못하고 내려왔다. 그래도 아침 일찍 올라와 볼 건 다 봤다는 안도감이 있어 다행이었다.

  티틀리스 설경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레스토랑 창가석(눈치보면서 서 있다가 어느 부부가 일어나자 낼름 앉았다 -_-v)에서 인도식 피자와 커다란 소시지를 점심으로 먹었고 다시 슈탄스슈타트까지 가기 위해 열차를 탔다. 중학생들이 단체로 소풍을 왔는지 열차 안이 내내 왁자지껄했다. 유럽에서도 애들은 애들이다. 창문열고 고개 내밀고 과자부스러기 바깥으로 던지고 난리법석이다. 피부색 다른 동양인에 대한 호기심인가. 건너편에 앉은 중학생이 몰래 내 모습을 카메라로 찍다 눈이 마주쳤다. 흑 ㅠ ㅠ 평소 누군가 사진을 찍어준다 해도 카메라 렌즈 입구를 손으로 가려버리던 나였는데 얼굴도 모르는 서양 꼬맹이 여학생이 무방비 상태인 내 모습을 고스란히 가져갔다. 한국에 싸이월드가 있다면 일본에는 믹시mixi가 있다. 스위스에도 뭔가 비스무리한 커뮤니티가 있다면 그 꼬맹이 여학생 사진첩 한 켠에 내 사진도 한 장 떡하니 올라와있을지도 모르는 일-_-;;

  슈탄스슈타트에서 탄 유람선은 유레일 패스 소지자는 별도 비용 없이 그냥 탑승할 수 있다지만 처음 30분정도는 우와우와- 하면서 주변 경치를 보느라 정신이 없지만 곧 지루해진다. 열차로 20분이면 도착할 거리를 유람선은 이곳 저곳 빙돌아 2시간이 걸려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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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탑승장 가는 길. 엥겔베르그. 이 곳 엥겔베르그에서 트리프제까지의 곤돌라 여행은 "천사의 눈"이라 불
  릴 정도로 아름다운 경치가 있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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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곤돌라에서 찍은 사진 네 장. 맨 밑 사진은 구름 위까지 올라온 지점에서 찍은 사진. 마을이 점으로 보
  인다. 저 호수도 가까이서 볼 때는 엄청나게 넓어보였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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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번 더 케이블카를 갈아타야 티틀리스 정상에 오를 수 있다. 빙하가 눈 앞에 보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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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프스 사진들. 한 여름에 눈을 밟고 서서 빙하를 바라보게 될 줄이야. 여름에도 눈이 녹지 않는 이 곳
  은 온통 하얀 눈이 햇빛을 반사해 선글라스를 벗을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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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가 탔던 튜브. 사진을 보니 새삼 또 한 번 내 모자가 생각난다 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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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상에서는 목욕탕 수증기가 뿜어져 나오듯 구름이 계속해서 생성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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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케이블카 탑승장이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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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쯤되면 거의 뭐.. 난 송강호와 유지태 주연 영화 남극일기 찍는 기분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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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보여, 안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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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름 밑으로 내려오니 다시 정경이 눈에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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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건 스위스의 기념품. 소방울. 여기 소들이 움직일 때마다 덜렁덜렁 거리는 소리와 비슷한데 그 녀석
  들도 이것과 동일한 품목을 착용하고 있는 지는 모르겠다. 비싼 것일수록 크기가 크고 소리가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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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슈탄스슈타트로 가는 열차와 열차에서 찍은 풍경. 저런 풍경이 끝도 없이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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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람선에서 찍은 사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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