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일찍 일어나 요기를 하고 급히 역으로 가 열차에 올라탔다. 그런데 미처 물을 사지 못해 우리는 4시간 동안 목마름을 몇 개의 사탕으로 달래며 루체른으로 이동했다. 헉, 그런데 스위스는 물가가 비싸도 너무 비싸다. 런던보다 더 비싸다고 느껴지는 곳이 있을 줄은 몰랐다. 호텔팩이나 호스텔팩으로 여행온 것이 아니라 배낭 하나씩만 둘러메고 왕복항공권 한 장, 유레일패스 한 장만 달랑 들고 온터라 도시 간 이동을 하면 제일 먼저 숙소를 구해야 하는데 어지간한 곳에는 방이 없었다. 무거운 짐을 잔뜩 짊어 지고 2시간이 넘도록 돌아다녔더니 등이 땀으로 젖었다. 그나마 방이 있다는 곳도 보통 하루 자는 데 240프랑(우리돈 19만원정도) 이상을 부르니 도무지 엄두가 나질 않았다.
돌고 돌다 결국 론리플래닛에 소개된 Hotel Lowengraben에 짐을 풀었다. 배낭여행객들도 많이 오는 곳으로 감옥을 개조해서 숙소로 만든 곳이었다. 기본적인 것만 갖춘 조그만 방에다, 창문에는 창살이 있고, 그나마 창문도 작아 실내는 어두웠다. 문 역시 감옥 문을 그대로 쓰면서 락도어만 설치한 것이라 복도를 걷다보면 내가 정말 감옥수감자가 된 느낌이었다. 외국인 여행자들은 숙소 내부 지하에 바와 나이트클럽이 있다는 사실에 꽤나 좋아라하는 것 같았다. 루체른의 물가를 감안하면 그나마 싼 곳을 구한 것이라지만 겨우 짐을 풀고 빨래를 해 널어놓고 나니 후진 침대와 좁은 방이 눈에 들어온다. 독일에서 묵은 곳보다 가격면에서는 두 배는 비싼 곳인데 이제까지 묵은 곳들에는 당연히 있었던 시설들이 여기에는 찾아볼 수 없다.
근처 마트에서 이것저것 사다가 점심 겸 저녁을 먹었다. 먹는 것 꽤나 밝히는(많이는 못먹는데 자주자주 먹는다. 조금만 먹어도 배불러 하는 대신 금방 배가 꺼져 자주 먹는다) 내가 점심 겸 저녁이라니, 아점도 일년에 한 번 먹을까 말까 할 정도로 아침을 꼬박꼬박 챙겨먹는데 머나먼 타지까지 와서 점저(점심 겸 저녁 ㅠ ㅠ)을 먹고 있자니 집이 그립다. 그리고 우리가 산 샌드위치는 . .비싸고 맛없다. 내가 만들어도 이것보다는 훨씬 맛있게 만들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면서 우걱우걱 먹었다. 빵은 언제 만들어 둔 건지 차디차고 질기다. 이름모를 야채가 입안으로 주욱 딸려 들어온다. 빵 뿐만 아니라 이름 모를 야채도 질기다. .
동생이 물을 샀는데 우리 돈 2,500원이었다. 스위스는 물도 참 비싸다. 차가운 샌드위치에 목이 메여 물을 마시는데 한 모금 마시니 톡 쏜다. 제길, 잘못 샀다. 말로만 듣던 유럽의 탄산수다. ㅠ ㅠ 동생이 물을 사온다고 할 때 그렇게 가스 있는지 없는지 직원에게 확실히 물어보고 사오라고 했건만. 동생은 오히려 당당하게 자기한테는 잘못이 없다고 말한다. 대체 직원한테 가스가 있는지 없는지 물어볼 때 뭐라고 얘기했냐고 물었다. 자기가 "pure?"라고 물어봤더니 직원이 흔쾌히 그렇다고 했다는 내 동생 대답이 걸작이다.
물 깨끗하냐고 물어보면 당연히 깨끗하다 그러지 "사실은 조금 찝찝할지도 몰라요."라고 대답하는 직원이 세상 천지에 어디 있겠느냔 말이다. 아놔 이 좌슥, 내가 그렇게 물을 살 때는 잘 보고 사라고 했건만 2,500원씩이나 주면서 탄산수를 사다니. 탄산수에 대해 설명하자면, 유럽의 물은 우리나라의 물과 달리 석회질이 많아 함부로 마실 수가 없다. 석회질 덕분에 샤워할 때 거품도 잘 나지 않고 잘 씻기지도 않아 불편하다. 탄산수는 탄산음료 처럼 톡 쏘는 물인데, 단 맛이나 과일 맛 없이 그냥 맹물이 톡 쏘기 때문에 그 맛이 상당히 .. 뭐랄까 시금 털털하고 상당히 찝찝하다.
여행 가이드북에서는 탄산수와 그냥 우리가 마시는 물을 구분하는 방법으로 병을 흔들어 물방울이 유난히 많이 생기거나 병이 팽팽해지면 탄산수일 가능성이 높다는 점 등을 소개하고 있다. 하지만 탄산수나 미네랄 워터나 흔들어 생기는 기포로 둘을 명확히 구분하기에는 모호한 면이 있고, 물병에 표기된 글자로 구분하는 것이 가장 확실하다. Natural Mineral Water라고 표기되어 있다면 안심하고 마셔도 된다. 이탈리아, 프랑스, 스위스처럼 병 포장지를 영어로 표기하고 있지 않은 국가에서도 뭔가 글자가 Natural Mineral Water 비슷하게 적혀 있으면 그걸 집으면 된다.
그렇게 감옥 스타일의 좁은 방에서 차가운 빵과 엽기적인 가스 물로(이상하게 이걸 마시면 개구리처럼 배가 불러오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_-) 허기를 채우다 보니 영락없는 죄수같다. 여전히 배고프고 비싸고 맛없다. 경치는 정말 좋은데 물가가 너무 높다.
여행을 하다보니 이런 저런 생각을 하게 된다. 앞만 보며 달리다 모처럼 갖는 비싼 휴식이다. 작년 한 학기 내내 번 돈을 이 짧은 기간 동안 모조리 쏟아붓고 있으니 말이다. 데미안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우리는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싸운다. 알은 곧 세계이다. 태어나려고 하는 자는 세계를 파괴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 새는 신을 향해 날아간다. 그 신의 이름은 '아브락삭스(Abraxas)’라고 한다.'
계속해서 한 군데에만 머무른다면 나는 그것을 세상의 전부로 인식해버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간접경험도 중요하지만 직접 보고 듣고 느끼는 것도 중요하다. 영상 매체로 보나 실제 눈으로 보나 그게 그거 아닌가 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이런 말을 하는 이들은 십중팔구 직접 체험해본 경험이 없어 그 의미를 온전히 알지 못하거나, 충분히 소화해낼 역량이 형성되지 못한 시기에 방문했던 것은 아닐까(특히나 온갖 역사와 신화, 유적이 어우러진 유럽은, 단언컨데, 아는 만큼 보인다). 과거 유럽의 귀족들이 자녀가 지금의 고등학교 수준의 교육을 마치면 그랜드 투어 Grand Tour를 시켰던 이유도 바로 직접적인 경험을 통해 보고 느끼는 순간의 가치, 그리고 그러한 경험의 축적이 가져다 주는 가치를 높이 산 것이 아닐까.
‘런던에 싫증났다면 인생에 싫증난 것이다’라는 사뮤엘 존슨의 말처럼 런던은 온갖 트렌드가 공존하는 도시이다. 2백50여 개 국적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사는 런던 시가지를 걸어다녔던 이들이 바라보는 관점과, 브라운관을 통해 희여멀건 화면을 얼마간 바라본 이가 느끼는 바가 동일할 리 없다. 독일, 스위스도 마찬가지. 이러다 보면 세계 각국을 여행하고 싶다는 욕심까지 한가득 품게 된다 - 여유가 된다면. 그리고, 이런 면면들이 모여 한국으로 돌아가면 한층 더 치열하게 살아야 겠다는 다짐으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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