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역까지 와서야 동생 녀석의 표정이 굳으며 하는 말
"헉, 카메라 놓고 왔다"
카메라를 두고 왔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고 가지러 간 사이(우리는 니콘 D80과 삼성의 똑딱이를 가져갔다 D80은 내가 똑딱이는 동생이 항상 휴대했다) 애초에 우리가 타려던 열차가 출발해 30분을 더 기다려야 했고 놓쳤던 열차는 50분이면 하이델베르크에 도착하는 데 반해 우리가 탄 열차는 멀리 돌아 1시간 30분을 가야 해서 도합 1시간을 더 지체한 셈이 되었다.
하이델베르그 대학광장에서 소시지를 끼운 빵과 아이스크림을 먹었다. 빵은 뭐 크로와상처럼 맛있게 버터나 마가린 발라 구운 빵도 아니고 그냥 딱딱한 빵인데(따뜻하지도 않다) 이런 빵에 소시지를 끼워먹어야 소시지 본연의 맛을 느낄 수 있다고 한다. 호밀 빵에 소시지를 반으로 접어넣고(소시지가 길어서) 볶은 양파를 듬뿍 얹어준 그 맛은 정말 잊을 수 없다. 아이스크림은 소프트 아이스크림이었는데 런던탑에서 먹었던 그 맛을 따라가지는 못했다.
하이델베르그 성벽에서는 아직도 전쟁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었고, 칼 데오도르 다리의 악사가 들려주는 대부 메인 음악은 뭔가 묘연한 분위기까지 불러일으켰다. 성에 올라 내려다보는 하이델베르그의 모습 역시 한 편의 엽서였다. 도저히 카메라로는 그 모습을 온전히 담을 수 없을 것 같은 풍광이 눈 앞에 펼쳐졌다. 하이델베르그 성은 적색 사암으로 된 고딕-르네상스 건축으로 반폐허 상태라는 점이 도리어 낭만적인 풍광에 힘을 실어주었다.
철학자의 길에서는 올라가는 길 내내 알 수 없는 열매 향기가 코로 스며들었다. 그런데 사실 그 길을 올라가면서 도저히 철학적 사유를 할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사진은 예쁘게 나왔지만, 실제로는 너무 가파르고, 길은 좁다. 그 당시엔 거친 숨소리를 내쉬며 올라갔다.
하이델베르그를 둘러보고 프랑크푸르트로 돌아가기 위해 중앙역으로 터벅터벅 걸어가는 데 갑자기 앞으로 맨 보조가방이 가벼워지더니 뭔가가 투웅- 소리를 내며 데굴데굴 굴러 옆에 흐르던 강에 퐁- 떨어졌다. 헉- 저건 뭔가 익숙한 물병인데, 황급히 가방을 보니 물병이 없다. 물값이 비싸 물병을 항상 휴대했는데, 물병을 자꾸 꺼내고 넣는게 귀찮아 그냥 보조가방 앞 주머니에 꽂아둔 것이 화근이었다. 이미 살랑거리는 물결에 물병은 강가 중앙부를 향해 가고 있어 그냥 포기하고 걸었다. 그런데 걸으며 무심코 옆을 보니 중앙부로 갔던 물병이 다시 물결에 밀려 강가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황급히 동생은 빙 돌아 강가로 달려가고 있었고 나는 열심히 물병 사진을 찍었다 -_- (지금 생각하면 뭔가 많이 웃기다. 그 상황에 대체 왜 물병 사진을 찍어야 했을까 ㅋㅋ) 동생이 손을 뻗자 물병이 닿을랑 말랑, 나는 열심히 조금만 더! 조금만 더!를 웃어대며 외쳤고(중간 중간 사진 찍어가며), 무슨 일인가 싶어 자전거를 세우고 같이 난간에 서서 보던 독일인 두 명 역시 그들 말로 뭐라뭐라 막 웃으면서 외쳤다. 독일인 두 명과 함께 연신 고함치랴 웃음 터져나오는 것 추스리랴 이모저모로 사진 찍기가 힘들었다. 그렇게 동생은 물병을 강가에서 다시 건져냈다. 여행에 활력(?)을 더해주는 해프닝. 막상 물병을 건지고나니 물병을 빠뜨린 건 난데 왜 자기가 달려가 건져내냐며 투덜거리는 동생.
저녁으로 소시지 끼운 빵과 치킨을 먹으려 했는데, 그 전날 갔던 가판대가 그 자리에 있지 않아 동생이 '우헐~~~' 울부짖었다. 우린 그날 저녁 6.5 유로짜리 케밥을 먹었다. 돈 없고 배불리 먹고 싶을 땐 케밥 만한 음식이 없다. 살짝 매콤해 느끼한 유럽 음식들 사이에서 삶의 활력을 더해주기도 한다. 케밥을 열심히 먹고 있는데, 자전거에 유난히 관심이 많은 동생의 시선이 다른 곳에 가 있다. 그리고는 얼마 지나지 않아 자꾸만 저치에서 자전거 탄 무리가 묘기를 보인대서, 뒤돌아본 순간 자전거가 어딜 들이받더니 뒷 담으로 사람만 넘어가 한참 웃었다. 뎅그라니 남아있는 건 자전거 한 대 뿐.
"니가 말한 묘기가 저거냐?"
자전거를 타던 사람 입장에서는 대형 사고였겠지만 그렇게 케밥 먹다 말고 정신없이 웃었다. 최고다. 나는 유럽 여섯개국을 돌면서 이후로 이만큼이나 웃음을 선사하는 묘기는 두 번 다시 볼 수 없었다. 내일은, 스위스다. 나는 독일을 빨리 벗어나고 싶었다. 내게는 별다른 매력을 주지 못했던. 독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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