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랑플라스의 야경을 보지 못한 채, '에이~ 여느 도시처럼 문학가들이 과장한 것일거야'라고 애써 합리화하며 ICE에 올랐건만, 론리플래닛을 열심히 뒤적이고 있는데 불쑥 나타나는 사진 한 장 - 그랑플라스의 야경. 젠장, 환상적이다. 사진 한장에 담긴 그랑플라스의 야경은 가히 환상적이었다. 대체 왜 내가 이런 엄청난 야경을 놓친 건지 시간을 되돌리고만 싶었다. 우리는 그렇게 '흐어어어어얼~~~ 그랑플라스의 야경~~'을 외치며 아우성쳤고, 초고속열차 ICE는 우리의 아우성은 아랑곳않고 프랑크푸르트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그렇게 우리는 ICE를 타고 프랑크푸르트로 넘어왔다. ICE는 우리나라가 고속철도를 선정할 때 프랑스의 TGV와 마지막까지 경합을 벌였던 기체로 독일 대부분의 도시를 연결하고 있다. 내부 시설 역시 현대식인데 그 디자인은 뭔가 독일스럽다고나 할까. 프랑스의 TGV는 프랑스답고, 이탈리아의 에우로스타는 이탈리아스럽다. 유럽까지 왔다면 대개 유레일패스를 소지하고 있을터 각국이 자랑하는 고속열차를 한번쯤은 타보는 것이 좋다고 본다. 이 시대 첨단 기술의 집합체이기 때문에 열차를 타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경험이 된다.
ICE의 내부는 뭔가 차갑고 이성적인 독일인스럽다는 느낌이었다. 이탈리아의 에우로스타와 프랑스의 TGV가 유레일패스 소지자에게도 별도의 요금을 부과했던 것과는 달리 ICE는 유레일패스 소지자에게 예약을 요구하지 않아 좋았다. 개인적으로 프랑스의 떼제베(TGV), 이탈리아의 에우로스타, 독일의 ICE 중에서 ICE가 가장 쾌적한 환경인 것 같다. 칼 자이스 렌즈를 만드는 과정이나, 휘슬러 사에서 냄비 뚜껑 하나를 만드는 데 들이는 공력은 엄청나다. 실제 그냥 맛보기만 할 수 있을정도의 소개 동영상만 봐도 왜 그들의 그들의 기술에 그토록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지 짐작이 간다(평소 카메라 렌즈 가격에 대해 불만이 많았는데 칼 자이스 렌즈 사의 렌즈 제작 과정을 담은 동영상을 본 이후 어느정도는 조용히 있다;;그래도 비싸다는 느낌은 지울 수 없지만). ICE 역시 그러한 장신정신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본다.
독일에서도 벨기에와 마찬가지로 길을 건너는 이가 있어도 신호등 신호를 우선시하는 모습이 보였다. 이쯤되면 무단횡단을 해도 도리어 속도를 줄이고 건너가라며 웃으며 손짓하는 런던이 낭만적이라고 회상해볼 정도다. 게다가 하루 동안 둘러본 프랑크푸르트는 도무지 매력을 느끼지 못하겠다. 런던의 2층버스가, 벨기에 그랑플라스의 왁자한 웃음소리가 그리웠다. 뢰머광장의 황량함을 보니 왜 빅토르 위고가 그랑플라스를 유럽 최고의 광장이라 추켜세웠는지 알 것 같았다. 사실 그랑플라스도 스케일 면에서는 한국의 이런 저런 커다란 광장에 비할 바는 못되지만 그 오밀조밀함과 북적거림, 그리고 달콤한 홍합요리 냄새가 어우러져 유쾌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것이 최고의 기분좋은 두근거림을 선사해주었었는데 말이다. 뢰머광장을 보니 새삼 그랑플라스가 그리워졌다. 아까 본 론리플래닛의 사진 한 장이 또 다시 생각난다. 흑.. 그랑플라스..
프랑크푸르트는 ICE의 단단하고 이성적인 중후함만큼이나 말없고 차가운 도시라는 느낌만 강해졌다. How much 같은 단순한 영어도 알아듣는 이가 정말 드물다. 알아들어도 독일어로 대답하니 대강 표정과 맥락으로 짐작할 따름이다. 독일에서 왜 '우리 영어 공부 좀 합시다'같은 공익 광고가 나오는 건지 피부로 체감하는 시간이었다.
다만 독일제 소시지의 맛은 정말 굉장했다. 하지만, 우리가 산 독일식 피자는 에러(너무 짜다, 하긴 독일 피자는 들어보지 못한 원산지의 피자다. 이탈리안, 아메리칸, 멕시칸 스타일 피자는 들어봤지만), 멋모르고 구입한 머쉬멜로 역시 에러였다(이건 너무 달다). 레몬- 라임 맛 아이스티 맛은 훌륭했다. 소시지는 레스토랑에서 팔기도 하고, 지나가다 가판대에서 파는 녀석을 사먹어도 맛이 좋다. 보통 식당에서는 감자나 채 썬 양배추를 함께 내오기도 하며, 가판대에서는 차가운 호밀빵에 소시지를 끼워 머스타드 소스를 발라 준다. 보통 케찹과 머스타드 소스를 선택할 수 있다. 물론, 두 가지 모두 발라달라고 요청할 수 있다. 소시지 종류는 굉장히 다양해 길거리에 파는 소시지만 해도 보통 우리가 흔히 말하는 소시지, 송아지 고기로 만든 소시지, 피를 넣은 소시지 등 다양한 종류를 팔고 있다. 그외에 독일에서도 터키계 이민자들의 영향으로 곳곳에서 케밥을 흔히 접할 수 있어 저렴한 가격에 한 끼를 때울 수 있다.
한국으로 돌아왔을 때 아버지와 이야기를 나누다가 독일 이야기가 나온 적이 있었다. 그러다가 독일 소시지 이야기가 나왔는데 아버지도 독일에 계실 때 소시지를 몇 번 드셨던 모양이다. 공통 주제가 나오니 아버지가 계속 독일 이야기를 하신다. 그런데 아버지가 말씀하시는 걸 듣다 보니 헛, 이건 뭔가 아니다. 소시지가 하얀 접시에 담겨 나오고, 모짜렐라 치즈를 얹은 토마토와 채 썬 양배추를 곁들인 샐러드, 그리고 통 감자와 화이트 와인이 같이 나온다고요??? 크앙- 이건 격이 다르잖아요. 아버지 아들은 길거리에서 파는 소시지- 차디찬 호밀빵에 끼운- 를 꾸깃꾸깃한 돈을 지불하고 길거리에 서서 먹었는데 아버지가 말씀하시는 소시지는 왠지 품격이 다른 레스토랑에서 드신 메뉴인 듯 합니다. 부자간 공감대 형성 실패.ㅋㅋ
독일 맥주의 명성은 많이 들었다. 개인적으로 알고 지내는 교수님도 잠시 언급해주셨고, 가격 역시 우리나라의 반 값 정도로 형성되어 있는 것을 보았지만 개인적으로 과실주나 와인 외에 다른 주류는 마시지 않아 흥미가 없었다. 이는 9월에 열리는 옥토버 페스트(맥주 축제)에 관심이 전혀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효모, 호프, 맥아, 물'의 순수 자연원료 외에 다른 물질을 넣으면 위법이라는 맥주 순수법 역시 흐려지고 있어 독일 맥주는 뭔가 특별하다는 느낌도 없었다.
기왕 주류 이야기가 나왔으니 하나 첨언하자면, 맥주 하면 우리는 보통 독일을 떠올리지만 여행을 하면서 만났던 여행자들은 최고의 맥주 생산국으로 체코, 벨기에를 꼽는 모습을 많이 봤다. 두 나라 모두 맥주 종류만 수천종이 넘으니 가히 독일과 어깨를 나란히 해도 손색이 없다 하겠다. 체코는 방문하지 않아서 내가 뭐라 말할 입장은 안되지만, 벨기에에서 마셔볼만한 녀석으로는 '크릭 kriek'이 있다. 달콤한 체리를 원료로 한 과실주로 그 붉은 빛깔과 부드러운 맛이 최고(복숭아를 원료로 한 크릭도 있다. 둘 다 맛있다). 벨기에에 가면 꼭 한 번 먹어볼 것. 현지인 사이에서는 주로 여자들이 마신다고 한다. 달콤하고 부드러워 탄산음료와 별반 차이가 없어 그런 것인지도. 그만큼 술을 좋아하지 않는 이도 부담없이 마실 수 있다.
찾기가 힘들다>
광장은 그랑플라스만한 곳이 없다. 그랑플라스와 비교해본다면 이 곳은 사람이 없어 황량하고 낯설고,
차가운 느낌 일색이었다>
프랑크푸르트 구시가지의 80%정도는 2차대전 때 연합군의 폭격으로 지도상에서 사라졌었고, 이후 재건한 것이 지금의 거의 완벽한 복원으로 이어졌다. 14, 15세기 건물들의 모습은 뢰머 광장의 건물들을 통해 미루어 짐작해볼 수 있으며 볼프강 폰 괴테가 태어난 괴테 생가 역시 이 곳에 마련되어 있어 그의 일상생활을 추적해볼 수 있는 기회를 준다. 벨기에에서 독일로 넘어왔더니 눈길을 사로잡는 음식이 없다. 따끈따끈한 소시지 맛은 일품이지만 그외에 배낭여행자가 먹을 만한 음식으로는 딱히 와닿는 것이 없다. 술 꽤나 좋아하는 이들에게는 매력적인 곳이겠다. 아참, 아펠바인을 먹을 때는 원주를 그냥 마시지 말고 물과 섞어 먹어야 한다. 현지인들도 그렇게 마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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